*남상국씨 시신 수색 일부러 늦춘다는 둥, 억측 한때 야속/"속 많이 상했어요"지난 11일 낮 12시35분 서울 여의도 한강둔치에 위치한 영등포소방서 119수난구조대 상황실. 옆에 딸린 휴게실 겸 식당에서 막 점심을 끝낸 대원들이 오전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 등을 화제 삼아 한담을 나누던 시각. 돌연 '뚜우, 뚜우…'하는 요란한 경보음과 함께 서울소방방재센터와 연결된 스피커에서 다급한 지령이 떨어졌다. "영등포 수난구조 출동, 영등포 수난구조 출동! 한남대교 남단 투신사고 발생!"
"어? 거긴 성동 관할인데…." 의아해 하면서도 대원들의 동작은 거의 본능적이었다. 자리를 박차고는 강가에 정박한 보트로 쏜살같이 달려 내려갔다. 긴급발진 명령이 떨어진 전투비행단의 조종사 대기실 모습과 하나 다르지 않았다. 순식간에 잠수복으로 갈아입은 대원들을 태운 보트가 내달리기 시작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3분.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은 출동이었다. 현장으로 가는 동안에 무전기를 통해 구체적인 상황이 들어왔다. 대우건설 남상국(南相國) 사장이 투신했다는. "아, 그랬구나…." 워낙 충격적이고 민감한 사건이어서 영등포팀에까지 지령이 떨어진 것이었다.
사고현장에는 관할 성동소방서 수난구조대 동료들이 이미 도착해 수색준비를 하고 있었다. 잇따라 서초소방서의 119구조대, 한강초소경찰 등이 속속 합류했다. 다리 위에는 기자들도 새까맣게 몰려섰다. 수색범위가 정해졌다. 투신현장인 한남대교 밑서부터 하류 100m 지점까지 폭 50m. 산소통을 멘 대원들이 지체없이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한강에서 물에 빠진 사람을 찾는 건 그야말로 대해에서 바늘찾기다. 물속 시정거리는 채 30㎝가 되지않으므로 믿을 건 감촉 뿐이다. 수심 4∼5m 하저(河底)를 손에 물컹하는 감촉이 올 때까지 일일이 더듬어가는 식이다. 게다가 몇 년 전부터 줄곧 확장 보수공사가 진행돼온 한남대교 아래는 온갖 생활쓰레기에다 폐건자재가 난마처럼 뒤엉킨 위험지대. '아차'하는 순간 날카롭게 잘려진 철근 따위에 사정없이 찔리기 일쑤다. 30분 마다 산소통을 바꿔가며 하루종일 물 속을 드나들었어도 성과가 없었다.
이튿날부터는 수색범위가 길이 200m, 폭 100m로 늘어났다. 6,600평이 넘는 엄청난 넓이다. 탁류 속을 한뼘 한뼘 짚어가는 상황에서 이 정도면 망망대해나 다름없다. 새벽 동틀 때부터 자정까지 전 대원이 매달렸어도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사나흘 지나면서부터는 갖가지 무책임한 소문들이 대원들의 귀에까지 들어왔다. 남 사장이 아예 투신을 안 했다든지, 또는 이미 헤엄쳐나갔다는 따위의. 야속한 내용도 있었다. "아니, 의도적으로 수색을 늦추고 있다고요? 기가 막혀서." 연일 강행군으로 기진한 대원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강에 늘어뜨린 밧줄을 따라 모심기 하듯 촘촘하게 바닥 훑기를 열하루째. 마침내 남 사장의 시신이 발견됐다. 한남대교에서 하류로 100m, 남쪽 강변에서 20여m 떨어진 수심 2m 지점에서였다. 방금 전 물에 서 나온 영등포팀으로부터 다음 구역을 인계받은 119특수구조대원(원래 해상, 산악 등지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팀인데 이번에 지원 투입됐다)이 물 위로 솟으며 수신호를 보냈다. 그 때를 회상하던 영등포소방서 수난구조대장 고정호(高淨湖·36·소방위)씨의 얼굴에 아쉬운 표정이 비쳤다. "끝났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솔직히 좀 아깝기도 했어요. 이왕이면 우리 대원의 손으로 끝내길 바랬지요. 바로 우리 옆 구역이었는데…. 하긴 뭐 다 같은 119 식구들이니까요."
한강에서 시신을 찾는 일은 이렇게 어렵다. "강 바닥에는 자전거, 장롱, 킥보드, 드럼통 등…, 아무튼 우리가 아는 모든 물건이 다 있습니다. 투신자나 추락한 사람이 이런 틈새에 걸리면 수색이 난감해지지요. 그렇지만 않으면 당장은 시신을 못 찾더라도 어느 정도 지나면(부패가 빨리 진행되는 여름철에는 일주일 정도 내에) 수면위로 떠오릅니다." 사연이 어떻든, 생전의 지위가 무엇이든 시신 인양은 늘 가슴 아프고 우울한 일이다. "우리는 원칙적으로 사람을 살려내는 구조대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죽은 이를 건져내는 게 본연의 임무는 아니라는 거지요. 불행을 당한 유족을 생각해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119 수난구조대원은 그렇게 한강에서 삶과 죽음을 일상처럼 경험한다. 대원들은 거의가 육군 특전사나 해군 UDT/SEAL, SSU 등의 군 특수부대 출신들이지만 영등포팀 18명을 이끄는 고씨 만은 특이하게 외항선 1등 항해사 출신이다. 그에게 물과의 인연은 숙명이다. 전남 신안의 섬에서 태어난 것이 그렇고, 아버지가 지어주었다는 '맑은 호수(淨湖)'라는 뜻의 특이한 이름도 그렇다. 목포 해양대학을 나와 해군을 거쳐 10만톤에 달하는 광석운반선, 벌크캐리어 등을 타고 전세계 50여개국 항구를 돌아다닌 마도로스 생활을 했다. 전직 동기는 결혼 때문이란다. "아무래도 오래 집을 비우는 떠돌이생활을 해서는 장가 가기도 힘들겠더라구요." 평소 119대원들의 깨끗한 봉사와 희생의 이미지를 동경하던 차에 마침 수난구조대 특채공고가 났다. 98년 2월에 소방장으로 임용돼 성동소방서 수난구조대장을 맡았다가 2000년 9월 승진해 지금의 자리로 왔다. (한강의 수난구조대는 성동과 영등포 두 곳 뿐이다. 잠수교를 경계로 각기 상·하류를 맡고 있다) 그 사이에 뜻대로 결혼도 했다.
영등포팀의 한해 출동 건수는 평균 300건을 훌쩍 넘는다. 거의 매일 비상상황에 맞닥뜨리는 셈이다. 사고는 강변에서, 다리에서 수시로 일어난다. 무엇보다 행사와 야유 인파가 많은 여의도 둔치에 있는 탓에 객기 부리는 취객들에 항상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술을 마시면 몸에 열이 나는데다, 과시욕이 생겨서 물에 뛰어드는 이가 많지요. 특히 월드컵 때는 흥분을 이기지 못해 무작정 물에 뛰어드는 경우가 잦아 대원들이 애를 많이 먹었어요." 그 뿐만이 아니다. 모형비행기(한대에 수백만원짜리들이다)에다 축구공, 지갑, 틀니, 양말 따위을 건져달라는 신고까지도 들어온다. 올해 초에는 결빙으로 강 한가운데 갇힌 오리들을 구해낸 일도 있었다. 다리 위에서는 투신에다 과속, 운전 부주의 등으로 인한 차량 추락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둔치 쪽에서 물로 뛰어드는 경우와 달리 한강 다리 위에서 투신하면 거의 살기가 어려워요. 그 높이에서 떨어지면 수면에 부딪치는 충격으로 그 순간 내장파열이나 척추손상을 입기 십상이거든요."
다른 사고야 구해준 뒤 단단히 안전교육을 시켜 돌려보내면 그만이지만 자살의 경우는 삶의 비극적인 단면을 보는 것 같아서 착잡하다. 고씨가 막 일을 시작한 때는 IMF 사태 뒤여서 생활고로 인한 투신자살이 유난히 많았다. 살림에 부담된다고 연로한 부모를 내다버리는 기막힌 패륜도 있었다. "그 뒤로 좀 나아지는 가 싶더니 지난해부터 자살자가 다시 급증하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들어서만도 투신사고가 벌써 20건이 넘습니다. 건져내 보면 누추한 옷차림들이 많지요." 이런 이들은 혹 구조해낸다 해도 당사자나 유족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원망을 듣지 않으면 다행이란다. "얼마 전에도 50대 아주머니가 물로 뛰어들었어요. 마침 두터운 옷이 부력을 받아 금세 가라앉지 않는 바람에 바로 구해낼 수 있었지요. 사채를 썼다가 감당하지 못하게 된 경우더라고요. 통곡을 하면서 '왜 구해주었느냐'고 마구 항의를 합디다."
남녀간의 문제로 인한 투신도 적지않단다. "둔치에서 부부나 연인 관계로 보이는 남녀가 격하게 싸우는 걸 보면 바짝 긴장해 주시합니다. 더구나 술 마신 상태라면 어느 한 쪽이 충동적으로 물로 뛰어드는 일이 많거든요." 재미있는 건(표현이 적당치는 않지만) 결혼 전 연인이 싸우거나 이별할 경우에는 주로 남자가 투신하는 경우가 많고, 결혼한 부부라면 여자 쪽의 자살 기도율이 훨씬 높다는 겁니다." 글쎄, 그도 그럴 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에서 건져낸 시신은 아무래도 제 모습을 갖추고 있기가 어렵다. 수온이 낮은 겨울철은 좀 낫지만 대개는 물에 불고 부패해 노련한 구조대원들도 차마 그 형상과 악취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사는 일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제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만은 하지 마세요. 본인이야 훌훌 털고 떠나 시원할지 모르지만 남은 사람들에게는 정말 씻지 못할 죄를 짓는 것이지요. 달려온 유족이 몸부림치는 걸 보면 같이 가슴이 무너집니다. 더구나 남겨놓은 인생의 마지막 모습이 그렇게 흉해서야…."
한강에서의 숱한 죽음을 통해 고정호씨가 절실히 배우고 있는 것은 삶의 더 없는 소중함이다.
/편집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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