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빌딩 등 부동산에서 주식, 그리고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까지.' 싱가포르 자금이 한국 시장을 휩쓸고 있다. 풍부한 유동성을 무기로 한국 땅에서 부동산과 주식, 그리고 금융기관까지 닥치는 대로 삼킬 조짐이다.◆도심 빌딩 싹쓸이 한 GIC
싱가포르 투자 펀드의 양대 축은 싱가포르 정부가 100% 지분을 갖고 있는 싱가포르투자청(GIC)과 테마섹홀딩스다. 30년 가까이 싱가포르를 통치한 리콴유 전 총리가 GIC 이사회 의장을, 리콴유 전 총리의 며느리인 호칭이 테마섹의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어 두 펀드 모두 사실상 이들 가족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
자산 운용 규모가 120조원에 달하는 GIC는 외환 위기 이후 국내 대형 빌딩 매입으로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2000년6월 서울 무교동 파이낸스센터 빌딩(4,300억원)을 시작으로 프라임타워(옛 아시아나빌딩·500억원) 코오롱빌딩(760억원) 무교빌딩(430억원) 등 서울 도심의 대형 빌딩 매물을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파이낸스센터 빌딩의 경우 자산 가치가 8,000억원을 넘어서는 등 이미 막대한 투자 차익이 예상되고 있다. 최근엔 이랜드 계열 '2001아울렛'에 5,000억원을 투자키로 하고 점포 건물을 모두 사들였고, 대우종합기계 인수전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아시아은행' 설립 꿈꾸는 테마섹
GIC가 상대적으로 단기 투자자의 성격을 지니며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를 주로 한다면, 자산 운용 규모가 40조원 안팎으로 GIC의 3분의 1 수준인 테마섹은 은행, 공기업 등 장기 전략적 투자에 적극적이다. 지난해 국민은행과 함께 인도네시아 BII은행을 인수하며 국내에 처음 존재를 알린 후 한미은행 인수전에 이어 최근엔 하나은행 지분(10%)과 국민은행 지분(9.3%) 인수설이 모락모락 나돌고 있다.
테마섹이 최근 DBS은행(싱가포르) 다나몬은행(인도네시아) ICICI은행(인도) 등 아시아권 은행에 투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은 그들의 '팬(Pan)-아시아 전략'과 맞닿아 있다. BII은행 인수를 위해 테마섹과 접촉해 온 국민은행 이증락 부행장은 "아시아권 은행을 인수해 세계은행(IBRD)과 같은 아시아은행을 만들겠다는 장기 목표를 갖고 있다"며 "정부에 잉여자금이 넘쳐 자금 조달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식 시장에도 싱가포르 '큰 손'
주식 시장에서도 싱가포르의 기세는 등등하다. 지난해 4·4분기 싱가포르 국적 외국인투자자의 주식 순매수 규모는 3조3,516억원으로 외국인 전체 순매수 규모의 52.1%에 달했다. 특히 그간 줄곧 1위를 차지해왔던 미국계 투자자 순매수(3,765억원) 규모의 10배에 달했다. 올 1∼2월에는 순매도로 돌아서긴 했지만 거래 비중은 1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 자금의 상당수는 미국계 헤지펀드들이 싱가포르를 거쳐 국내에 유입됐을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지만, GIC 등의 투자 확대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최근엔 국채선물 시장에서도 싱가포르계 '큰 손'들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금융계 한 인사는 "이대로 가면 풍부한 유동성을 무기로 싱가포르계 자본이 한국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며 "현재 추진중인 한국투자공사(KIC) 설립을 서두르는 등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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