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3일 저녁 서울 광화문에 있었다. 한국인 친구가 광화문에 가자고 권했을 때 데모에 대한 선입견으로 좀 망설였다. 처음 한국에 왔던 1990년대 초만해도 시내를 지나다 최루탄 연기에 숨을 쉴 수 없는 고통을 겪은 일이 있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한국 역사의 현장에 직접 가보는 것은 쉽지 않은 기회라는 친구의 말에 솔깃해 집을 나섰다.뉴스를 통해서만 한국을 접한 외국인은 처음에는 모두 긴장할 것이라 생각한다. 터키에 있을 때 한국에 관한 뉴스는 태풍으로 홍수가 난 도시가 아니면 북한 핵 문제나 격렬하게 정부에 반대하는 학생들과 무력으로 진압하는 경찰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부모님은 한국 유학이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하셨다. 한국은 언제 전쟁이 날지 모르는 나라이고, 경찰과 데모대의 또 다른 '전쟁'으로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날 광화문의 모습은 기억 속의 데모와 많이 달랐다. 대학생도 많았지만 더 많이 보인 것은 직장인과 아이를 안고 온 젊은 부부들이었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에 모두가 크게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으나 돌을 집어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만 명의 손에는 '탄핵무효'라고 쓴 카드와 촛불이 들려 있을 뿐이었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는데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의사에 반해 대통령을 탄핵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의원들의 무능과 부패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국외자로 그 자리에 있었지만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광화문에서 본 사람들의 모습에는 월드컵 때 붉은 옷을 입고 환호하던 모습처럼 흥겨운 무엇이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도 질서정연했으며 종이컵 속에 든 촛불처럼 서로에게 따스했다. 내가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하고 외치면 모두가 호응해 대한민국을 연호할 것만 같은 밤이었으니 이런 시위라면 혹시 터키에서 부모님이 뉴스 시간에 내 모습을 보시더라도 크게 놀라시지는 않을 것 같다.
한국에서 정치적 사건들을 볼 때마다 외국인인 나는 자연스럽게 거기서 세계를 보게 된다. 이제 세상에는 무모한 전쟁이나 다툼을 원하지 않는 다수와 그에 반대하여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소수가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들도 자신만의 독백을 멈추고 나와서 함께 대화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술탄 훼라 아크프나르 터키인·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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