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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여성들이 정치를 바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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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여성들이 정치를 바꿀까

입력
2004.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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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는 지금 두 가지 실험을 하고 있다.대통령 탄핵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으며 대통령을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이냐는 실험, 그리고 여성들이 대거 정치에 진출하여 어떤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이냐는 실험이 그것이다.

대통령의 자리매김은 우리 정치에서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노무현 정권 출범 후 대통령과 야당들은 대통령의 권위를 깨는 데 역설적으로 기여했고, 그 과정에서 탄핵이라는 대형사고가 터졌다. 그 사고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민주주의가 진전할 수도, 퇴보할 수도 있다.

여자들의 정계 진출 확대는 탄핵 사태 못지않게 '혁명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제1당인 한나라당 대표로 박근혜 의원이 선출됐고, 박영선 이승희 전여옥씨가 3당 대변인으로 뛰고 있다. 추미애 의원은 난파 위험에 빠진 민주당을 이끌어갈 거의 유일한 인물로 당 내외에서 지목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여인천하'다. 그러나 "여성들이 한국 정치를 장악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여자들이 어떤 요직을 차지하든 정치를 장악할 힘이 아직은 없기 때문이다.

지연 학연 이념 등으로 뭉치고 등 돌리는 우리 현실에서 만일 어떤 세력이 이 정도로 요직을 휩쓸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그 세력은 말 그대로 한국 정치를 장악하고, 그것을 우려하는 여론이 빗발쳤을 것이다.

오늘 여성들이 정계의 요직에 진출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오늘의 정국이 위기에 빠졌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주도해 온 정치가 총체적으로 붕괴하자 국면을 전환시킬 효과적인 상징물로 여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전반적으로 여성 진출을 확대시키려는 노력이 있긴 하지만, 기존 정치 체제가 멀쩡했다면 이처럼 쉽게 여성에게 요직을 내주지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여자들의 기회는 위기 속에서 온다. '얼굴마담'으로, 임시조치로 여성을 내세우는 경우가 흔하다. 여자는 지원해 주는 파벌이 없으니 경계할 필요가 없고, 교체하기에도 부담이 적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성들이 일단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면 그런 배경에 위축되어서는 안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긍정적으로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자신을 지원해 주는 파벌이 없고, 기존의 관습에 물들지 않았다는 것이야말로 여성의 최대 강점이다. 여성들은 원칙과 정도를 자신의 힘으로 삼아야 한다. 한국 정치는 원칙과 정도의 실종으로 붕괴했다. 정치에 진출한 여성들이 기존의 행태에 합세한다면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다. 특히 후배 여성들의 진로에 막대한 지장을 주게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여자의 몫으로 몇 자리를 배정하느냐, 그 자리에 어떤 여자들을 발탁하느냐는 권한은 지금까지 전적으로 당 간부들의 수중에 있었다. 그것은 '남자들이 시켜 주는 자리'였다. 여성의원의 입에서 '후궁 간택'이라는 모욕적인 말까지 나왔을 정도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여성의 정계 진출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고, 어떤 당도 간부들 마음대로 여성을 '간택'하기는 어렵게 됐다. 이번 총선에는 51명의 여성이 지역구에 출마했고, 비례대표 56명 중 절반을 여성이 차지하게 된다. 전체 의원 299석 중 15% 정도를 기대해 볼 만하다.

만족할 만한 비율은 아니지만, 17대 국회는 역대 국회 중 가장 많은 여성 의원을 갖게 된다. 남성 위주의 정치 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시점에서 여성의원들에게 주어진 책무는 막중하다.

대통령 탄핵 사태는 이 나라에서 가부장적인 대통령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그리고 여성 진출은 가부장적인 정치를 끝내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이 의미 있는 변화에 국민도 동참해야 한다. 두 개의 정치 실험이 좋은 결실을 거두도록 분열하지 말고 힘을 모아야 한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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