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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 밥을 짓는 일의 지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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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 밥을 짓는 일의 지엄함

입력
2004.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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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어머니로부터 밥 짓는 법을 배웠다. 형들은 대처로 공부를 나갔고, 집에서 농사지은 것들을 매일 장에 내다 팔아야 하는 어머니는 저녁 늦게야 집으로 돌아왔다.어머니는 나와 동생에게 어두운 광의 쌀독에서 쌀을 덜어낼 때 양을 가늠하는 법, 그 쌀을 자잘하게 홈이 파인 나무 구박에 담아 씻고 일어 돌을 분리하는 법, 부뚜막의 무쇠 솥을 깨끗이 씻어내고 거기에 쌀을 안치는 법, 보리와 콩 등의 잡곡을 미리 불리는 법, 쌀을 안칠 때 밥에 감자를 섞는 법, 밥이 질지도 되지도 않게 물을 잡는 법,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아궁이에 불을 얼마큼 때다가 멈추어야지만 밥이 눌거나 설지 않고 제대로 되는지 그 불을 가늠하는 법 등을 가르쳐주었다.

그래도 실수로 밥을 설게 할 때가 있고, 눌게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나이 열 살에 밥도 제대로 못 짓는 것이 커서는 무얼 제대로 하겠느냐'는 꾸중이 날아들었다.

돌아보면 밥을 짓는 일이야 말로 내겐 먹고 사는 일의 첫 지엄함이었던 것이다.'햇반의 시대', 그 지엄하고도 엄중한 것들의 의미가 쓸쓸히 사라져 가고 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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