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유령이 한국을 배회하고 있다, 실업이라는 유령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을 모방한 것으로, 이 책을 열면 곧 마주치는 대목이다.실업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태백'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 등 실업관련 각종 자조적인 조어들은 이제 일상어가 되어 버렸다. '일자리 창출'이 우리사회 화두가 된지도 오래다.
실업, 취업난은 왜 발생하나. 일반적으로 외환위기 이후의 심각한 경기부진과 이에 따른 기업의 구조조정, 노동의 유연성 강화, 대부분 기업의 신규 고용축소 등이 그 이유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대학에서 정치경제학과 사회학을 강의하고 있는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것들은 취업난을 보여주는 사회적 현상이지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의 설명은 이렇다. 고용에 대해서는 임금을 지불해야 하는데 취업자에게 임금을 주는 것은 자본 뿐이다. 따라서 고용감소와 취업난은 기업이 노동자에게 지불해야 하는 임금과 관련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총 자본에서 임금으로 지불하는 자본 부분이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라는 이론이 한국에도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즉, 한국사회에 실업률 증가 경향의 법칙이 있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40년 동안의 우리사회의 산업별 자본구성과 취업자수 변화 등에 관한 통계를 분석한 결과다.
그래서 저자는 '실업 사회'라는 제목을 붙였다. 실업 사회란 실업 자체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 비정규직 노동자, 불완전 취업자 들이 다수를 이루는 사회다. 이 사회에서는 소수만이 정규직에 취업하고 극소수만이 매우 높은 소득을 올리게 된다. 부와 빈곤의 극심한 편중현상이 심화한다. 다수에게는 고통스러운 사회지만, 극소수에게는 '신나는' 사회인 것이다.
저자는 대안으로 우선 법정 및 실질 노동시간의 축소를 들고 있다. 이와 함께 최저임금제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정되고 철저하게 실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아가 실업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20대 80 사회에서 20이 되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80이 서로 힘을 합치고 연대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저자가 실업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는 '희망'이다. 그는 관련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 실업률이라는 수치가 결코 담을 수 없는 실업자의 삶을, 실업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체험담을 정리해 '희망이 길이다'라는 제목으로 부록에 실었다. 희망을 잃지않고 희망을 찾아 노력하는 것만이 길이라는 것이다.
왜 취업이 이토록 안될까, 경기가 풀리면 곧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 실업상태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등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때 읽어볼 만하다. 저자는 이 책이 취업 준비생, 특히 청년 실업자들이 취업하는데 그리고 자신의 직업을 선택하고 사회를 보는 눈을 넓히는데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
/논설위원 s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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