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정부의 9·11 테러 대응과 이라크 전쟁 결정 과정을 신랄하게 비판한 리처드 클라크 전 백악관 테러담당 보좌관의 증언이 부시 대통령의 재선 길을 강타하고 있다.클라크 증언의 줄기는 부시 정부가 9·11 전까지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의 테러 위협을 긴급 현안으로 간주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부시 대통령이 아버지 부시 대통령 때부터의 과제인 이라크 공격을 안보의 최우선 순위로 설정하면서 알 카에다의 실재적 위협을 간과했고, 그것이 9·11 테러를 막지 못한 원인이 됐다는 주장이다. 그 주장이 사실이면 안보 대통령의 이미지 구축을 위해 부시 진영이 쌓아온 공든탑이 하루 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다.
클라크 증언의 반향은 엄청났다. 그가 21일 NBC TV에 출연한 뒤 미국 언론은 클라크의 주장과 부시측의 대응을 연일 대서특필하고 있다. 그의 주장을 담은 저서'모든 적에 대항하여'는 22일 발매 1시간 만에 매진될 만큼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23일 9·11 진상조사 청문회에 출석한 클라크는 단연 돋보이는 '스타 증인'이었다.
백악관은 화들짝 놀랐다. 부시의 측근들과 공화당 인사들은 잇단 방송 출연과 신문기고를 통해 클라크를 '책 장사''승진 누락 불평분자'로 몰았다. 민주당 존 케리 상원의원의 선거운동을 위한 정치적 동기를 의심하는 발언도 잇따랐다.
비판을 무시로 대응해 온 백악관의 관행도 바뀌고 있다. 기자들을 백악관 서관으로 불러 고위관리들과의 '온 더 레코드(보도전제)' 인터뷰 주선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클라크가 콘돌리사 라이스 안보보좌관에게 보낸 이메일 중 백악관의 대 테러 정책을 찬양한 내용까지 실명으로 폭스 뉴스에 공개했다.
하지만 돌풍은 쉽게 사그러들 기세가 아니다. 제임스 서버 아메리칸대 교수는 "그들은 상처 받고 있고 그것이 그들이 클라크 공격에 매달리는 이유"라고 말했다.
청문회에서 공화당계 위원들의 반격도 효과를 보지 못했다. 제임스 톰슨 전 일리노이 주지사는 한 손에 폭스 뉴스 보도를, 다른 한 손에 클라크의 책을 들고 "어느 것이 진실이냐"고 따졌지만 소신 답변으로 일관한 클라크에게 9·11 희생자 가족들이 박수를 치는 바람에 질문을 잇지 못할 정도였다.
상원 민주당 원내 대표인 톰 대슐 의원은 25일 "부시 정부가 클라크의 증언을 사실에 입각해 처리하지 않고 대신 그의 신용을 떨어뜨리기 위해 신랄한 공격을 시작했다"고 클라크를 엄호했다.
그러나 클라크 바람이 민주당측에 끝까지 유리하게 작용할지는 속단할 수 없다. 9·11 이전 부시 정부의 테러 정책에 대한 지나친 비판은 9·11 이후 부시 대통령이 발휘한 지도력을 환기시켜 오히려 민주당이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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