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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대안부재의 상실감

입력
2004.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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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지 2주일이 됐다.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에도 국정은 고건 대행체제로 그런대로 잘 굴러가고 있는 것 같다. 바뀐 것이라고는 우리의 일상사에서 떼어놓을 수 없었던 노 대통령의 모습이 일시 사라진 것일 뿐 시끄러운 정치판의 모양새는 그대로다.다만 탄핵안을 밀어붙인 한나라와 민주 등 야당은 지금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지지율이 바닥 모르게 곤두박질치는가 하면 대신 열린우리당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어림잡아 한나라당 지지율이 열린우리당의 3분의 1선에 묶여 있고, 민주당의 지지율은 민노당에도 뒤지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자민련은 그게 무슨 정당인가 싶을 정도다.

이런 추세라면 총선에서의 지각변동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 동안 기세 등등했던 한나라당은 '영남의 자민련'꼴이 안 된다는 보장이 없고, 호남의 맹주 민주당은 극심한 분열 끝에 "교섭단체만이라도…"하는 최악의 상황을 배제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당초 야당은 여론의 규탄분위기가 4∼5일, 길어야 1주일이면 정리될 것이라 장담했다. 하지만 예측은 크게 빗나갔다.

왜 이렇게 됐을까. 야당이 대안세력이란 믿음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실정엔 실망 정도이나 대안부재엔 절망하게 된다. 그런데도 야당은 방송의 편파보도 탓이라 둘러댄다. 더러는 언론사의 한결 같은 여론조사결과에 대해 조작설까지 들먹인다. 패닉상태가 아니고는 나오기 힘든 반응이다.

탄핵안 표결 당시를 상기해보라. 경호권을 발동해 농성중인 소수여당 의원들의 팔과 다리를 비틀고 개 끌듯 끌어낸 경우는 5공 군사정권에서도 상상치 못했던 일이다. 여론은 언제나 약자를 편들게 마련이다.

또 투표당일 민주당의 한 여성 감표(監票)위원을 보자. 그는 청탁기업에게서 억대를 받은 혐의로 16대 구속 제1호라는 불명예를 안은 사람이다. 징역1년의 실형을 선고 받고 어느새 보석 출감했다고 한다. 구치소 갈 때 포토라인에서 얼굴을 가리려 모자를 깊게 눌러썼던 모습이 생생하다. 이런 사람이 감표를 했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문책하고 탄핵한다는 것인가. 이런 역설적인 모습을 TV로 지켜본 사람들이 어떻게 절망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어처구니없는 역설에도 조순형의 '쓴 소리'나 추미애의 '양심'은 들리거나 보이지 않았다. 이런 사람을 감표작업에 내세운 지휘부로는 야당이 대체세력 된다는 건 백년하청이다.

탄핵심판에 임하는 야당의 무신경은 사람들을 더욱 좌절케 한다. 국회측 소추위원인 법사위원장은 이 나라 민주주의를 생매장한 유신헌법 제정에 참여한 이력으로 논란되고 있다. 반면 대통령측 간사변호인은 유신체제에 맞서다가 옥살이를 했다. 야당에 제정신이 있다면 이런 어불성설의 '대칭'은 피했어야 한다. 야당은 언제나 명분에서는 우위에 서야 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박근혜 의원을 새 대표로 실지회복에 나섰다. 그들의 텃밭 영남까지 무너지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처럼 보인다. 하지만 '박정희 향수'나 '육영수 신드롬'이 표심을 잡을 것으로 생각했다면 이야말로 착각이다. 세상과 유권자가 바뀐 것을 알아야 한다. 등돌린 민심이 당 간판얼굴과 당사가 천막으로 바뀌었다고 돌아올 리 만무하다.

변화의 격량 속에서 살아 남는 길은 기득권을 과감히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변화와 개혁에 순응하는 일이다. 지역주의에 안주해 기득권 포기를 완강히 거부했던 민주당 처지가 지금 어떤가. 아직 섣부르다고 할지 모르나 소위 중진이란 사람들이 호남 텃밭에서 배척 당하는 상황이 웅변하지 않는가.

노 대통령이 충무공을 소재로 한 소설 '칼의 노래'를 다시 펴 들었다고 한다. 그가 눈 여겨 봐야 할 대목은 충무공의 성공적인 복권이 아니라 한때나마 몰락하게 된 원인이어야 한다. 거기서 교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노 진 환 주필jhr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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