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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 춘추]"BMW 장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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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 춘추]"BMW 장금이"

입력
2004.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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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를 대학로에서 만났다. 몇 년 만이다. 생맥주를 마시면서 매운 닭구이를 먹었다. 장가는 안 갈테냐는 내 말에 느닷없이 연애사의 물꼬가 터졌다. 여자는 늘씬한 팔등신에 장금이처럼 생겼었단다. 증권사를 다녔고, 비엠더블유를 몰고 산단다. 연애는 6년이 넘었고, 둘 사이는 모르는 것 빼곤 다 아는 사이라. 이쯤 되면 소위 결혼이란 걸 해야지? 나무젓가락 분지르듯 합의는 한방에. 결혼날짜를 찍고 예식장을 부킹하고 클럽메드 예약까지. 신혼을 살 집 인테리어도 폼 나게 끝냈다.그러던 차에 후배 모친께서 낙상을 해 병원에 입원했고, 장금이는 열 일 다 제치고 병수발을 들었다. 후배의 끈적한 감동, 모친의 살벌한 신뢰, 그녀는 이 시대 최고 신부감으로 추앙 받아 마땅했다. 병실에서 병실로 소문은 일파만파, 팔등신 미녀가 휘청거리며 복도를 걸을 때마다 주위는 칭찬과 탄성이 파도처럼 일었다. 후배는 흐뭇한 미소를 질질 흘리며 초야만을 꿈꿨다. 어느 날이 왔다. 그녀는 잠시 다녀올 데가 있다며 떠났다. 며칠이 걸린단다. 후배는 특박 보내는 인사계 심정으로 애썼으니 다녀오너라 했다.

며칠은 일주일이고 열흘이었다. 신호음은 가는데 전화는 안받는다. 혹시? 불길하던 찰나 장금이로부터 전화다. 이렇게 결혼은 곤란해. 아직은 일러. 날벼락이닷!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장금이는 제주도 갔다가 한양까지 금방도 오더니만 비엠더블류 장금이는 도시 팽 돌아선 마음이 함흥차사다. 왜 그러는데? 나를 위한 시간이 더 필요해. 그럼 나는 우째? 불문가지 닭 쫓던 견공 신세.

그렇게 장금이는 떠났다. "이럴 수 있어"라는 말은 짜증 나니까 안 했단다. 시간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주마. 후배는 밸도 없이 기다렸다. 6개월쯤? 얼레리∼ 장금이는 휴대폰 모델 같이 생긴 재미유학생과 결혼식을 올리고, 이튿날 미국으로 날랐다. 후배는 매운 닭 때문인지 궁금해선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지난 6년간 우리는 성실하게 연애를 했거든요? 몰랐나 자네? 이별은 불성실해.

고 선 웅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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