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말 한 패션업체 홍보직원과 점심약속이 있었습니다. 바로 전날 서울의 낮기온이 16도를 웃돌며 초여름을 방불케하더니 밤부터 갑작스런 한파가 몰아닥쳐 수은주가 영하로 떨어진 몹시 추운 날이었어요. 출근길에 드라이클리닝을 해서 넣어두었던 겨울코트를 도로 꺼내입으며 투덜거렸던 기억도 납니다.그런데 회사앞에서 만난 홍보직원은 추위속에도 외투없이 얇은 봄 정장 차림이었습니다. 보기에도 추울 것 같아서 무심코 "어머, 코트라도 걸치고 오지요" 했더니 그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춥다고 봄이 아닌가요. 봄옷 사라고 백화점에 쫙 깔아놓고 제가 겨울옷 입으면 안되죠." 아아, 이런 걸 살신성인이라고 하나요.
언뜻 화려해보이는 패션업체 홍보맨들의 속을 들여다보면 참 고충이 많습니다. 세상에 힘들지않은 일이 있겠습니까만, 이들은 업무외 자신이 '걸어다니는 광고' 노릇도 해야한다는 부담감에 항상 시달리지요.
역시 같은 홍보직원은 며칠 전 회의시간에 상사로부터 "패션회사 홍보쟁이가 어떻게 매일 똑 같은 옷을 입느냐"며 따끔한 질책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전날 밤 숙취탓에 경황없이 출근했는데 같은 술자리에 있었던 상사가 전날 입었던 셔츠와 넥타이를 정확히 알아본 것이죠.
또 다른 홍보우먼은 아무리 해도 빠지지않는 살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있어요. 출산 이후 불은 몸이 고민거리인데 주위에서 "좀 너무하는 것 아니냐, 홍보우먼이 자기 브랜드 옷을 감각있게 빼입고 다녀야 브랜드 이미지를 홍보할 수 있지않느냐"는 농섞인 충고를 자주 듣는다는 거예요. 아무리 좋은 뜻이 담긴 말도 자주 들으면 비수가 되는 법이죠.
옷 차려입으랴, 몸 다듬으랴, 물(!) 관리하랴, 패션업체 홍보를 하려면 돈이 이만저만 많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물 관리는 늘 최신 트렌드를 발빠르게 포착하고 알려야하는 패션업체 특성상 각종 사교모임에 활발히 참가해야 한다는 뜻이죠. 한 정장업체 홍보우먼은 "그나마 회사에서 캐주얼차림 근무를 허용하니까 다행이지 정장을 입었으면 돈 벌어서 고스란히 옷과 액세서리, 화장품 값으로 날릴 판"이라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허영의 불꽃을 먹고사는 게 패션이라고 하지요. 그 불꽃이 황홀한 이유는 바로 이런 사람들 하나하나의 땀과 고민을 자양분으로 삼고있기 때문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오늘도 패션홍보를 위해 부나비처럼 몸을 던지는 그들에게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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