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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로 보내는 편지/"친구 보옥아, 어찌 그리 일찍 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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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로 보내는 편지/"친구 보옥아, 어찌 그리 일찍 갔니"

입력
2004.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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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친구 보옥아 보거라.나는 지금 빛 바랜 흑백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너의 모습을 보고 있단다. 뽀얀 피부에 단발머리를 질끈 묶은 네 젊은 시절 모습을 보니 갑자기 즐거웠던 지난 시절이 떠오르는구나.

우리는 봄이면 손을 잡고 넓은 들에 나가 쑥, 냉이, 달래를 캐며 놀았고 여름이면 동네 친구들과 모여 앉아서 보리 짚을 땋으면서 옛날 이야기를 했지. 가을이면 지천에 널린 메뚜기를 잡으러 다녔고 겨울이면 눈싸움을 하거나 눈사람을 만들었다. 우린 그렇게 지내면서 우정을 쌓아갔지. 참, 그때 우리와 단짝이던 재희도 기억나지?

너와 그렇게 친하게 지냈으면서도 네가 우리 오빠 친구와 결혼할 줄은 몰랐단다.

어느 날 너는 태섭 오빠와 결혼한다고 말했지. 우리 동네에는 또래의 남자 친구도 많았는데 그 친구들이 군대에 가게 되면 조촐하게 송별회를 마련해 주었지. 아마 송별회에서 미래의 네 남편을 알게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결혼하고 나서 너는 남편 따라 대전으로 이사 갔고 나는 부산에 눌러 앉는 통에 소식이 뜸해졌지. 이런저런 일상사에 시달리느라 비록 연락은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나는 네가 잘 지내는지 항상 궁금했단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오빠한테 "보옥이 잘 지내요? 태섭이 오빠 부인 말이에요"하고 물었지. 그런데 오빠 입에서 청천벽력 같은 대답이 나오더구나. "보옥이는 죽었어." 나는 너무 놀라 태섭 오빠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지. 그러자 오빠는 "태섭이한테 전화하지 마라. 마음이 더 아플 게다"하면서 말리더구나.

보옥아, 뭐가 그리 급해서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 두고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나갔니? 아, 이제는 사진 말고는 너의 자취를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 볼 길이 없구나. 세월이 어쩌면 이리 빨리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나도 이제 머리카락이 희끗해지는 나이가 됐단다. 이 나이가 돼서 생각해 보니 청춘만큼 아름다운 시절은 없는 것 같구나.

보옥아, 너의 큰 오빠가 공군 장교라고 자랑을 했잖니. 수년 전 신문에 네 오빠가 공군 장성으로 승진했다고 얼굴 사진이 실렸더구나. 하늘 나라에서도 오빠의 성공을 기뻐하고 있겠지? 하늘 나라에서 편안히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는다.

/hope5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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