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남자직업, 여자직업 운운하며 남녀의 영역을 구분 짓는다면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다. 여성이 군에서 총을 들고, 남성이 집을 꾸미고 요리를 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시대다남성의 명함에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는 직함이 새겨져 있어도 놀랄 일은 아니다. 3월의 어느날,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이 직업을 가진 세명의 남자를 만났다. '로라 메르시에' 김상윤(31) 메이크업 팀장, '입생로랑' 예상효(31) 메이크업 팀장, 'RMK' 프로모션 메이크업팀 김유준(24)씨가 주인공이다.
백화점 화장품 매장에서 남성을 만나는 일이 드물지 않은 요즘이지만 세 사람의 특이한 경력을 되짚어보면 이들이 메이크업의 세계에 뛰어들게 된 사연 자체가 한편의 드라마같다.
유도 선수, 사진 작가에서 메이크업계로
김 팀장의 대학시절 전공은 유도. 재학 중 기획사에서 광고촬영을 위한 사진작가로 활동하다가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됐다. 예 팀장의 이력서는 더욱 놀랍다. 그는 1997년부터 2년간 LG 트윈스, 99년부터 2년간 한화 이글스에서 프로야구 선수로 뛰었다. 김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2년 동안 만화가 이현세씨의 '까치 화실'에서 장편 만화 '천국의 신화'를 함께 만든 만화가 지망생이었다.
김 팀장의 메이크업 경력은 올해로 10년. 남성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맏형 격인 그가 먼저 입을 연다.
"용인대에서 유도를 전공하면서 친구에게 사진을 배웠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흰 인화지에 영상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있으면 정말 행복했습니다. 메이크업을 하면서도 비슷한 쾌감을 느낍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쁨이랄까요."
김 팀장은 대학을 중퇴하고 광고 기획사에 들어가 광고사진을 촬영하면서 자연스럽게 메이크업을 접했다. 밋밋한 모델의 얼굴이 아름답게 변해가는 과정은 사진을 인화할 때와 비슷한 희열을 느끼게 했다.
93년 극단 '이바네다'에서 메이크업과 연극 특수분장을 시작, 96년 '도도', 99년 '바비 브라운' 등 굵직굵직한 브랜드에서 일하다 2000년에는 구찌, 질샌더, 펜디 등 세계적인 브랜드의 패션쇼에서 메이크업을 도맡아 했다. 2002년 색조 화장품 전문 브랜드 로라 메르시에 수석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자리 잡았다.
글러브 놓은 손에 메이크업 브러시를
글러브를 꼈던 두꺼운 손으로 여성의 얼굴에 색감을 불어넣는 예 팀장의 메이크업 경력은 예고없이 시작됐다. 배명고 야구부 시절 시속 140㎞의 강속구를 던지며 전국대회에서 박찬호, 조성민 등과 자웅을 겨루던 그가 야구와 연이 멀어진 것은 건국대를 거쳐 프로야구 선수가 되면서부터.
"뭔가 꼬인 듯 경기가 계속 풀리지 않았습니다. 프로야구 경력 4년에 통산 0승이라니, 어디서부턴가 크게 잘못됐던 거죠. LG 트윈스 시절 2군을 전전하다 99년 한화 이글스로 옮겼지만 다음해 무리한 욕심으로 어깨 부상까지 당했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유니폼을 벗기로 결정했죠."
평생 해오던 일이 야구인지라 방황을 피할 수는 없었다. 6개월간 말 그대로 '백수' 생활을 하는 동안 아버지마저 세상을 뜨자 절망은 깊어졌다. 2000년 말 방황과 절망이 지긋지긋해 친구가 몸담고 있던 색조 화장품 브랜드 MAC에 입사,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됐다. 주변의 호기심과 걱정을 비웃듯 예 팀장은 남들이 10년 걸려 오르기 어렵다는 수입 브랜드 메이크업 팀장의 자리를 4년만에 꿰찼다.
"10년 넘도록 날마다 메이크업을 해왔던 여성 동료들과 경쟁하기는 쉽지 않았죠. 야구를 하면서 몸에 익혔던 성실성과 부지런함, 그리고 인내심만이 저의 무기였습니다. 출근 첫날부터 지금까지 지각이라곤 한 적이 없어요. 결국 부지런함이 이긴다는 것은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죠."
"이젠 사람의 얼굴에 그림 그려요"
초등학생 시절 만화영화 '코난', 중학생 시절 이현세씨의 '공포의 외인구단'을 보며 만화가의 꿈을 키워온 김씨.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1996년 친구의 추천으로 이현세씨의 화실에 들어가면서 꿈을 이룬 듯 기뻐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밥 먹고 만화 그리는 게 일이었다'고 말하는 김씨에게도 현실의 벽은 두터웠다. 교통비 정도만 받으며 계속되는 밤샘 작업은 그렇다 쳐도 '만화책은 돈 내고 사보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회 분위기는 참기 어려웠다.
천근 쇳덩이를 매단 것처럼 마음이 무겁던 98년 어느날, 때마침 날아온 군 입대 영장을 손에 쥐고 김씨는 만화의 길을 접기로 어려운 결심을 했다.
"생계 때문에 어릴 때부터 동경하던 일을 그만둔다는 것은 참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만화는 접지만 붓은 놓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죠. 군 생활을 하며 도대체 붓 들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는 직업을 알게 됐습니다."
2000년 '바비 브라운'에서 메이크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후 2002년부터는 일본 화장품 '가네보'와 'RMK'에서 활동 중이다. 그는 만화를 하면서 배웠던 색감이나 얼굴의 비례 등이 메이크업에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남성이지만 기초적인 피부화장은 물론 눈썹까지 그리고 다닌다는 김씨. '어떻게 하면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메이크업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터득한 '자연스런 메이크업의 노하우'는 동료들이 따라올 수 없는 그의 무기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워낙 여성이 많은 동네인지라 재미와 고충이 늘 함께 한다. 남성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가장 큰 장점은 여성보다 객관적이라는 것. 화장에 익숙한 여성들은 알게 모르게 몸에 밴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는 반면 남성은 고객의 얼굴에 따른 장점과 단점을 정확히 파악, 객관적인 메이크업을 해줄 수 있다는 얘기다. 까다로운 '아줌마'들의 불만을 오히려 편안하게 넘길 수 있다거나 고객들에게 쉽게 기억된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경쟁력이다.
반면 '남자가 뭘 알겠냐'며 여성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바꿔달라는 고객, 동료와 조금만 친하게 지내면 어김없이 퍼지는 스캔들, 부모님까지 매장에 모시고 와 소개시키려는 스토커 같은 여성 고객 등 곤혹스러운 부분도 적지 않다.
김상윤 팀장은 "매일 처음 보는 사람과 얼굴을 맞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유도에서 배웠던 예(禮)를 이 일에서도 똑같이 적용한다"고 강조했다. 아무리 이상한 고객을 만나도 끝까지 친절하게 대하는 인격적 수양이 메이크업 테크닉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10년을 지내다 보니 운동하던 시절 친구들을 만나면 '말투가 이상해졌다'는 핀잔도 많이 듣는다.
예상효 팀장도 거든다. "처음에는 잔소리하는 동료에게 화를 내며 붓을 집어 던지기도 하고 괴팍한 고객의 얼굴을 장난스러운 메이크업으로 망쳐놓기도 했었죠. 그러면서 남은 것이 있다면 '절대 그래선 안되겠다'는 후회 뿐이었습니다. 남성 특유의 자존심이나 성질을 죽일수록 성공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성실성과 선한 경쟁심까지 버려서는 안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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