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는 살아 있었다. 아니 죽어 있었다. 강원도 양구에서 23일 발견된 여우의 사체는 이 동물의 안부를 궁금하게 한다. 최근 KBS TV가 다큐멘터리 '멸종'을 통해 절멸을 전한 직후여서 관심이 더 크다. 이 프로그램이 보여준 일본의 풍경은 여우가 개처럼 사람을 따르고 먹이도 받아 먹어 부러울 정도였다. 해방 전까지만 해도 남한에는 여우가 많았으나 1978년 지리산에서 한 마리가 잡힌 뒤에는 소식이 없었다. 모피를 얻으려는 인간의 남획과 쥐약이 원인이다. 이번에 발견된 것도 입에서 피를 흘린 것으로 보아 독극물을 먹은 것 같다고 한다.■ 여우는 이솝우화 이래 동·서양에서 모두 재수없고 간교한 동물로 인식돼 왔다. 전설의 고향과 같은 괴담의 천년 묵은 구미호(九尾狐)가 대표적 이미지다. 대구 호림동(狐林洞)의 원래 이름은 홀림이었으나 홀자가 좋지 않다고 여우의 기운이 깃든 호림동으로 고쳤고, 여우가 썩은 고기를 좋아한다 해서 소와 말의 공동묘지를 만들어 그 이후 부자마을이 됐다는 전설이 있다. 이 전설에서처럼 여우는 썩은 고기를 좋아해 무덤을 파내고 송장을 먹는 동물로 알려졌다. 게다가 여우는 굴도 자기가 파지 않고 너구리를 쫓아내고 그 굴을 쓰는 얌체다.
■ 그래서 사람에게 여우같다고 말하면 욕이 된다. 2차대전 때의 독일영웅 롬멜을 '사막의 여우'로 부른 것은 칭찬이 결코 아니다. 일제가 1895년 명성황후 시해 당시 작전명을 '여우사냥'이라고 붙인 데서도 여우가 술수와 변화로 인간을 괴롭히는 동물이라는 의식을 엿볼 수 있다. 그런 여우를 잡는 문제로 영국은 아직도 시끄럽다. 지난해 하원이 여우사냥 금지법안을 통과시켰으나 귀족들은 20만명 이상이 참여하는 전통스포츠라며 반대하고, 농민들은 농작물과 가축을 해치는 골칫거리를 없애야 한다며 관광수입이 줄어들까 봐 걱정하는 상황이다.
■ 여우가 사랑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보전해야 하는 이유는 그 자체로 자연이기 때문이다. 이 자연에 이유없이 태어난 생물은 없다고 생각하는 게 마땅하다. 요즘은 보기 어려워진 여우놀이의 절정은 눈 감고 앉은 술래에게 "죽었니? 살았니?"하고 외쳐 묻는 것이다. 왜 하필 술래가 여우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놀이를 통해 여우와 인간은 자연 속의 술래라는 동일체가 된다. 여우는 보전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여우는 다르다. 그런 인간이 이 세상에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불쾌해지는 사람들이 설치는 세상이어서 이런 생각을 더 하게 된다.
/임철순 수석논설위원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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