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가들은 바보가 아닐까. 무용가들이 들으면 벌컥 화를 내겠지만, 한때 그런 생각을 했다. 수많은 무용 공연 팸플릿에서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하기 힘든, 애매모호한 표현 혹은 유치한 감상으로 가득 찬 안무 노트를 읽을 때마다 '무용가들은 논리적 사고능력이 떨어지는 특수 집단이 아닐까' 하고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실제 공연에서 구태의연하게 낡은 어법을 반복하거나, 엉성하기 짝이 없는 오리무중 같은 무대를 보게 되면 그런 의심이 더욱 짙어지곤 했다.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무용가들이 '전부' 바보는 아니라는 쪽으로. 훌륭한 무용가의 훌륭한 작품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무용가들이 그저 몸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쓴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닫곤 한다. 특히 놀라운 상상력의 주인공들은 예술가의 창조성이 넘지 못할 경계가 없음을 거듭 확인시키면서 경탄을 자아내곤 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최근 한 대학출판부에서 나온 무용교재를 보고 또다시 실망했다. 현대무용의 주요 인물을 소개한 이 책은 2000년에 처음 나와 각 대학 무용학과의 교재 또는 교양과목 교재로 쓰였고, 이번에 개정판을 낸 것인데, 한마디로 부실하기 짝이 없다. 어색한 번역투 문장이 수두룩한 것을 보면 외국 문헌을 대충 베껴서 짜깁기한 흔적이 역력하고, 교정·교열조차 제대로 거치지 않았는지 사실의 오류와 잘못된 표기, 오·탈자가 수 없이 많다. 이런 책이 수년 간 교재로 쓰였다니 기가 막힌다.
초판의 오류를 바로잡고 내용을 보강하는 게 개정판인데, 4년 만에 나온 개정판이 이 모양이니 더욱 미칠 노릇이다. 이런 책으로 공부하는 무용과 학생들이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런 책으로 배우니 일부 무용가들이 그 모양인가 보다. 이처럼 엉터리 교재를 써서, 무늬만 개정판으로 내놓은 교수는 마땅히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힐 일이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결코 드물지 않다는 데 있다. 이 책 말고도 각 대학의 무용과 교수들이 쓴 여러 교재에서 같은 문제를 봤다. 독자로서 요구한다. 이 책과 그 동류들을 당장 리콜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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