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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국난극복의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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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국난극복의 주역

입력
2004.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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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안 가결 이후 국민 여론을 보면, 국회가 탄핵 사유로 든 선거법 위반, 측근비리, 경제실정과 관련해 노 대통령이 잘한 것은 아니지만 탄핵 당할만한 사유는 되지 못하며, 더구나 국민으로부터 신뢰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임기 말의 국회가 탄핵을 발의·가결한 것 자체가 당리당략에 따른 후안무치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탄핵에 대한 입장 차이를 떠나 국민들의 이와 같은 판단은 옳은 것이다.지난 시절 수없이 왜곡되고 굴절된 정치상황은 오히려 우리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적 사건에 대한 현명한 통찰력과 냉정한 자제력을 길러주었다. 우리 국민들은 오늘의 상황을 정치적 시민으로 거듭 날 수 있는 민주시민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지 않는가.

과거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지배세력이 망쳐놓은 나라를 다시 세워놓은 건 바로 우리의 '어리석은 백성'들이었다. 우리 역사에서 국난극복의 주역이 한번이라도 지배층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3공화국의 거대여당이나 지금 16대 국회의 거대야당 모두 국민을 질곡의 늪으로 빠지게 하였다. 민주주의 작동원리인 견제와 균형을 상실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된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성숙한 국가의 유권자들은 어느 한쪽의 압승이나 완승이 아닌 낙승을 택하는 균형 있는 투표성향을 보이고 있다.

서유럽 국가에서는 보수와 진보세력이 상대방의 좋은 정책을 수용하면서 경쟁하는 과정에서 상호 보완적 기능을 하고 있으며, 보수세력이라 할지라도 지지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꾸준히 진보세력을 흡수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진보세력은 집권 후 보수세력을 개혁의 대상으로만 생각할 뿐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생각하는 인식이 부족하였으며, 보수세력도 집권에 성공한 진보세력의 존재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사실 어떠한 진보세력이든 집권 후에는 대개 보수화한다. 국가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권력의 생리이기 때문이다. 집권 후의 노 대통령을 보라. 노조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 스스로 변했다고 말했는데, 이게 어디 진보적 성향을 가진 대통령의 언행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보수세력이 진보세력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진보세력에 대한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국정에 대한 협조가 선행되어야 한다. 한국의 보수세력이 서유럽의 보수세력과 그 뿌리와 이념이 다르기는 하지만, 국회의 의석수를 늘리기 위한 방편 말고는 진보세력을 흡수하려는 노력을 별로 하지 않았다. 여기에 한국 보수세력의 한계가 있고 한국 정치의 비극이 있다.

오늘날 분명히 한국의 정치와 민주주의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그 위기는 새로운 기회를 잉태하고 있다. '제3의 사나이'(The Third Man)라는 영화를 통해 오손 웰스는 "이탈리아에서는 보르자(Borgia) 치하의 30년 동안 전쟁, 테러, 살인, 그리고 각종 유혈사태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 기간 이탈리아는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리고 르네상스를 만들었다. 스위스에서는 형제애적인 사랑으로 500년 동안 민주주의와 평화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그 동안 스위스는 무엇을 만들었는가? 고작 뻐꾸기 시계뿐이었다"라고 말하였다. 한국은 지난 100년 동안 일제 식민통치, 광복, 좌·우익 대립과 전쟁, 4·19혁명, 5·16 군사쿠데타, 광주민주화운동, 12·12 군사쿠데타, 6·10 시민항쟁 등 고난과 폭풍우의 역사를 꿋꿋이 헤쳐 왔다.

지금은 아무도 질곡과 혼란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끊임없는 기회를 제공하는 역동성은 약간의 위험과 약간의 불확실성을 내포하지만, 새로운 시대정신과 문화는 이 속에서 피어나는 법이다. 우리의 촛불시위가 바로 이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송 병 록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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