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말 그대로 천하를 호령한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신화와 전설의 시대는 제쳐두고, 당장 우리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신라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른 것이 서기 632년이다. 장녀인 그는 선왕이 아들이 없어 후계가 됐지만, 그저 자리를 지킨 것이 아니라 3국 통일의 기반을 다지고 왕권의 위엄과 나라의 위신을 드높인 것으로 칭송된다. 선정과 덕치를 기리는 시호(諡號)와 함께 대왕으로 불린 바탕에는 탁월한 도덕적 카리스마와 지혜로운 통치력이 있었을 것이다. 신라 여왕 가운데도 참담한 실패를 기록한 사례가 이런 추정이나 평가를 뒷받침한다.■ 세계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여왕은 대영제국의 전성기를 연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다. 헨리 8세와 비운의 여인 앤 볼린 사이에 태어난 그는 여성의 사회참여조차 봉쇄된 16세기 중반부터 45년이나 재임하면서 영국을 유사이래 가장 강력한 대국으로 우뚝 서게 했다. 어머니가 단두대에서 처형된 뒤 여러 계모와 밀정의 감시 속에 곤궁한 소녀가장으로 자란 그는 그러나 유난히 건강한 심신을 지닌 빼어난 왕재(王材)였다. 특히 당시 군주로는 드물게 현대적 직관과 사고를 지녔다. 백성의 희생을 강요하는 전쟁에 대한 혐오, 종교적 극단주의의 배격, 균형재정에 대한 집착이 그것이다.
■ 비운의 출생과 성장에서 비롯된 이런 본성과 소신이 성공적 치세를 지탱한 덕목이었다. 그는 늘 민중을 돌보고 교감했고, 전쟁을 피하면서도 영국을 초강대국으로 이끌었다. 여기에 스스로 독신을 택해 애인조차 두지 않은 금욕적 자기희생이 가부장적 질서와 후계자 보호의 한계를 뛰어넘게 했다. 엘리자베스 1세에 대한 탐구가 이어지는 것은 바로 이런 시대를 앞선 통치에서 새롭게 교훈을 찾는 노력이다. 독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덕목은 북유럽을 비롯한 선진 민주정치에서 선호하는 여성 지도자의 장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 여야가 여성대변인을 내세운 데 이어 두 야당이 위기 탈출을 이끌 지도자로 여성을 택한 것을 두고, '여인 천하'라는 비유가 나온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두고는 '영남권 공주'식으로 비아냥거리는 이도 있다. 여성에겐 척박한 정치환경에서 반길 일이라는 평가와, 명망가 중심의 얼굴마담일 뿐이라는 폄하가 엇갈린다. 그러나 수 십년 전 독재를 마냥 들먹일 것은 아니고, 사회와 정치가 단숨에 바뀔 것을 기대할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여야를 가림없이 정치를 이 지경으로 끌고 온 남성중심 정치에 모두가 환멸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다음 대선에는 박근혜 추미애 강금실이 붙을지 모른다는 얘기가 지레 나오는 연유를 잘 헤아려야 한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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