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어수선합니다. 무슨 일에든 선과 후, 앞과 뒤, 옳고 그름이 꼭 있는 것일까요? 자기의 주장과 다른 모든 것이 적이 되는 이치는 분명 아닌 듯 싶은데 말입니다.식물은 어떨까요? 줄기는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방향이 분명합니다. 덩굴식물은 때로 방향을 바꿔 물체를 감아올리는 타협을 하지만 궁극적으로 위를 향해 자기가 갈 방향을 잡아갑니다. 볕이 들지 않는 숲에서는 곧게 자라는 나무들도 가지를 굽혀 볕을 따라 휘어집니다. 그래야 살아 남아 후대를 기약하지요. 반대로 뿌리는 땅 속 아래로 향해 갑니다. 위 아래 구분이 안되도록 줄기를 잘라 거꾸로 놓아 뿌리가 날 자리가 위를 향하고 있어도 뿌리가 위로 자라는 법은 없습니다.
식물의 기관에서 앞뒤에 관해 곧잘 표현되는 것이 잎입니다. 식물을 식별할 때 잎의 뒷면에 털이 있다거나 잎맥이 돌출되거나 하는 등의 특징을 나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 잎의 앞면은 광합성을 하도록 대기를 향해 펼쳐지고 그에 적합한 조직들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잎의 뒷면엔 물의 손실을 줄이고 호흡을 잘 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만들어진 기공이 장치돼 있습니다. 하지만 비교적 확실한 것 같은 잎의 앞뒤가 언제나 명확한 것은 아닙니다. 길게 자란 창포의 잎에서 앞뒤를 가려내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아 보입니다.
파는 어떨까요. 우리가 먹는 부분이 잎인지 줄기인지도 구분이 안된다구요? 잎입니다. 아래 부분에 줄기가 조밀하고 여기에 잎이 밀집되어 있을 뿐이지요. 그러면 파 잎의 앞뒤 즉 표면과 뒷면은 어디일까요? 사방을 둘러보아도 속이 빈 원통형의 파 잎 말입니다. 앞뒤가 아니라 겉과 속만 있다고 해야 할까요. 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보통 속에 흰 부분이 잎의 표면에 속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파가 처음 올라오는 모습을 보면 밑부분 안쪽의 구멍에서 작은 돌기를 올려 쑥 자라 올라오는데 안쪽 속 조직이 돌출되는 형태이기 때문이랍니다. 양파(우리가 먹는 부분은 줄기입니다)에서 잎이 올라오는 모습을 상상하시면 좀 이해가 되실까요. 따지고 보면 그렇지만 솔직한 제 심정은 어느 부분이 파의 표면이 되는지가 그리 중요한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파가 아니더라도 소나무나 붓꽃 같이 잎의 앞뒤 구분이 어려운 식물을 구별하는 보다 학술적인 기준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줄기에서 잎이 나올 때 줄기에 면한 부분을 앞면이라고 합니다. 해부학적 측면에서 줄기와 잎에는 물관과 체관이 있어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원칙적으로 물관이 있는 부분을 앞, 체관이 있는 부분을 뒤로 본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로써도 도저히 구별이 어려운 것도 있습니다. 더운 지방에서 자라는 병솔나무 같은 경우 잎이 축에 수직으로 달리며 90도 정도 뒤틀어져서 앞뒤가 거의 같은 조직이랍니다. 광합성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자신만의 방법입니다. 대립과 갈등이 나라에 가득한 이즈음, 자기의 방향에 소신을 가지되 타인의 방식도 담아낼 수 있는 품이 식물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필요한 듯 합니다.
이 유 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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