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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포츠 50년]장정구 세계챔프 등극… 15防 신화 막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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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포츠 50년]장정구 세계챔프 등극… 15防 신화 막올라

입력
2004.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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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3월 26일무려 5년 8개월간 타이틀을 보유하며 경이적인 15차 타이틀방어를 기록한 장정구의 시대는 통쾌한 KO승과 함께 막이 올랐다.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벌어진 일라리오 사파타(24·파나마)와의 경기서 20세의 패기만만한 도전자 장정구(161㎝)는 7㎝나 작은 신장의 불리를 극복하려는 듯 1회부터 잔뜩 웅크린 자세로 상대의 옆구리를 노렸다. 이어 저돌적인 좌우 훅으로 몰아붙여 기선을 잡고 마침내 3회 중반 상대의 옆구리에 연타를 적중 시켰다. 체중조절에 애를 먹은 사파타는 소나기 펀치에 균형을 잃고 비틀거려 스탠딩 다운이 선언됐으며 주심은 카운트 8이 끝난 후에도 사파타가 등을 돌린 채 로프를 잡고 경기 의사를 보이지 않자 KO 판정을 내렸다.

80년 11월 신인왕전 우승 후 2년4개월 만이었다. 또한 80년 1월까지 김성준이 보유했던 타이틀이 6차례나 임자가 바뀐 끝에 한때 김의 스파링 파트너였던 장정구에게 돌아 오는 순간이었다. 장정구의 승리로 한국복싱은 세계 타이틀전 11연패 끝에 재기의 계기를 마련했으며, 본인도 사파타에게 6개월 전 첫 도전서 당한 판정패를 설욕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장정구는 이후 구시켄 요코(일본)가 갖고 있던 동양선수 및 라이트 플라이급 최다 방어 기록(13방)을 깨고 88년 6월 일본에서 2회 KO승으로 15차 방어를 이루었다.

오하시 히데유키와의 15차 방어전은 그 동안 타이틀전을 국내에서만 해 '안방 챔피언'이라는 오명이 붙었던 장정구의 첫 원정 경기이자 마지막 방어전이었다. 장정구는 이후 16, 17차 방어전까지 일정을 잡았으나 가정불화와 불면증으로 운동을 못해 연기하다가 타이틀 박탈위기에 몰리자 88년 10월 챔피언 벨트를 반납했다. 그리고 14개월만의 복귀전을 실패하고 플라이급으로 체급을 올려 가진 두 차례 타이틀전도 모두 분패, 쓸쓸히 링을 떠나야 했다.

1981년 3월 28일

19세의 황선애(한국체대 2년)가 세계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제76회 전영오픈 배드민턴 여자단식서 정상을 차지하자 세계의 언론은 '동양에서 갑자기 혜성이 나타났다"며 극찬했다.

런던근교 웸블리 경기장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황선애는 덴마크의 노장 레네 쾨펜(27)에게 2-0의 완승을 거두었다. 쾨펜은 이 대회 74·75년 우승자로 3연패를 노리던 강호. 그것도 두 세트 동안 단 3점만 내주는 11-1, 11-2의 완승이었기에 언론은 '남자와 같은 강한 스매싱을 하는 마녀'라며 황선애에게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국 여자배드민턴이 66년 방콕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이래 국제대회 출전 15년만에 이룬 쾌거였다.

당시 배드민턴은 세계선수권대회에 개인전이 없는 관계로 전영오픈 우승자를 세계 1인자로 꼽았으며 한국선수가 전영오픈에 출전한 것도 이 때가 처음이었다.

62년 충남 신탄진에서 태어나 배드민턴 명문 마산 성지여고에 스카우트 돼 2학년 때 대표선수가 된 황선애는 170㎝ 68㎏의 좋은 체격에서 나오는 강력한 스매싱과 기지의 드롭샷이 무기였다. 79·80년 국내 종합선수권을 2연패해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고, 전영오픈에 앞서 열린 대만 일본 스웨덴오픈을 차례로 석권하며 세계강자로 두각을 나타냈다.

1982년 3월 27일

81년 여름 갑작스럽게 창설작업에 들어간 프로야구는 숱한 진통을 겪은 끝에 그 해 12월 11일 창립총회를 열고 다음해 봄 서울 연고의 MBC 청룡, 부산의 롯데 자이언츠, 대구의 삼성 라이온즈, 광주의 해태 타이거즈, 대전의 OB 베어스, 인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6개 구단으로 출범했다.

3월 27일에는 동대문운동장에서 전두환 대통령의 시구에 이어 MBC-삼성전으로 역사적인 첫 장을 열었다. 운동장 주변은 아침부터 인산인해를 이뤘고 홈팀 MBC는 10회말 이종도(현 고려대 감독)의 만루홈런으로 11-7의 너무나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어 프로경기에 한껏 호기심을 가졌던 야구팬들을 매료시켰다.

만루홈런을 맞은 이선희(현 삼성 코치)는 OB와의 한국시리즈 최종전이 된 6차전에서 또 다시 김유동(현 정당인)에게 만루홈런을 허용, 역사에 남는 비운의 투수가 됐다.

OB는 선수층이 엷은 충남북을 연고로 하는 대신 서울 연고 선수를 MBC와 1-2의 비율로 나눠 가졌지만 전력이 중위권으로 평가됐었다. 그럼에도 미국 밀워키 브루어스의 마이너리그에서 2년간 뛰며 81년 리그 다승왕까지 차지했던 투수 박철순이 강속구와 아직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았던 너클볼, 포크볼등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하며 24승 7세이브를 기록한데 힘입어 선두를 질주했다.

박철순이 전반기에만 18승1패의 무적 행진을 벌여 전기리그 우승을 한 OB는 한국시리즈서 후기 우승팀 삼성을 4승1무1패로 눌러 원년 챔피언에 올랐다.

■그때 그사람 / 장정구

"정장을 하면 파마가 어울리지 않아서요…" 특유의 '장정구 파마' 머리를 기름을 듬뿍 발라 뒤로 넘기고 나온 그에게서는 이제 중년 티가 느껴진다. 만 41세. 어느 새 은퇴한 후 13년이 흘렀다.

링을 내려온 후 운동과는 완전 담을 쌓았다면서 연신 담배를 빨아대는 그는 건강에 대해 묻자 의외로 과잉반응을 보인다. "장정구는 아직 똘망똘망 합니다. 후유증 같은 건 전혀 없습니다."

옛날 돈이 급한 선배들은 경기가 잡히면 그 때부터 사우나에서 억지로 살을 빼고 굶은 후 링에 올라갔기 때문에 펀치를 맞으면 큰 충격을 받았지만 자신은 평소 잘 먹고 70∼90일간 충분히 근육과 체력을 만든 후 경기에 임해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

그는 "펀치의 충격이 아니라 첫 결혼의 후유증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한창 때 매맞아 번 돈을 다 잃었으니 억울해서 어떻게 삽니까. 15년이 지났지만 그 분함 때문에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가 않습니다."

챔피언시절 "56평짜리 워커힐 아파트 판 돈 등 수억원을 빼돌렸다"며 아내와 장모를 고소하는 등 가정불화로 고통을 겪었던 그는 "당시 언론에 보도된 것 보다 훨씬 많은 13억원을 벌었지만 두딸을 위해 고소를 취하하고 이혼할 때는 아파트 전세 보증금 5,000만원과 나중에 7,000만원에 판 충북 일죽의 땅 밖에 없었다"고.

지금은 재혼한 부인과 그 사이에서 낳은 두 딸을 데리고 일산의 전세 아파트에 살며 선배들의 도움으로 생활하고 있다.

"주변에 있던 사람의 90%는 저를 배신했어요. 모두 나를 이용하려고만 하고, 잘 나갈 때 수천만원을 빌려간 사람도 갚을 돈이 없다며 외면하더군요."

초등학교를 나와 열두살부터 복싱만 한 그가 은퇴 후 돈 벌이를 한 것은 자신을 키워 준 심영자회장의 프로모션에서 상무로 일하고 잠시 수입주방가구 회사에 몸담았던 게 전부. 그러나 그는 곧 대형 스포츠센터의 대표가 된다. 웰터급의 간판 스타였던 황충재와 함께 운영할 서초동 국제전자센터 지하의 '황&장 휘트니스 스포츠센터'가 7월에 개장한다.

장정구는 자신은 이름과 얼굴만 투자했으나 1,500평 규모에 사우나와 헬스클럽을 갖추고 복싱에어로빅을 지도할 이곳을 '제2의 링'으로 생각하고 몸바치겠다고 다짐한다. 또 황충재와 함께 침체된 복싱의 인기를 높일 새로운 사업을 곧 발표할 것이라고 귀띔.

링 위를 마구 뛰어 다니며 변칙적인 플레이를 펼치면서도 경량급에게 부족한 파워까지 지녀 팬들을 즐겁게 했던 '짱구' 장정구. 그는 라이트플라이급 타이틀 반납 후 다시 플라이급 왕좌에 도전, 두 번이나 다 이긴 경기를 놓치는 불운을 당했지만 마지막까지 보인 초인적인 투혼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91년 5월 무앙차이(태국)와의 마지막 경기에서는 정말 죽을 힘을 다했어요. 지금 아내와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때라 돈이 필요했습니다. 점수가 뒤지고 있어서 반드시 KO를 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11회에 다운을 뺏고도 마지막 12회에 마구 밀어 붙이다가 당했지요. 맞아서 못 일어난 게 아니라 너무 지쳐서 못 일어났던 거예요."

그는 15방후 타이틀을 반납했던 것은 서초동 빌라에 도둑이 든 후 걸린 불면증이 약을 먹을 정도로 심해졌고, 가정 불화까지 겹쳐 연습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당시 돈을 벌어도 다 뺏기니 운동할 의욕이 안 났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꿈이자 유일한 취미는 가족과 좋은 집에 살며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음식을 먹고, 여행하는 것이라는 장정구는 지금은 돈을 떠나 마음의 여유가 없어 가족에게 아무것도 못해주는 게 마음이 아플 뿐이라고 말한다.

그나마 2000년 말 멕시코에서 열린 '20세기 위대한 복서' 25명에 대한 시상식에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가 아빠의 자랑스런 모습을 보여 준 것으로 조금 보상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유석근 편집위원 s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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