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금이 아비 노릇도 변변히 못 해봤는데 드라마가 벌써 끝나다니 섭섭하기 그지 없소이다."'국민 드라마' 반열에 오른 '대장금'의 종영이 그 누구보다 서운한 사람이 있다. 내시에게 가짜 정력제를 팔아먹는 등 수시로 사기와 사고를 치면서도 수양딸 장금이를 아끼는 마음만은 한결 같은 수라간 대령 숙수(남자 조리사) 덕구 영감, 임현식(59)씨가 바로 그다. "이번엔 정말 잘 해보고 싶었는데 드라마가 전체적으로 장금이 위주로 진행되다 보니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별로 없었어. 다행인 건 한 회에 두, 세 번만 얼굴을 비쳐도 사람들이 엄청나게 자주 나온 줄 안다는 거야."
그는 '대장금'을 통해 PD가 일러준 것도 아니고 대본에도 없는 즉흥 대사와 익살스러운 표정의 '진수성찬'을 선보였다. 이를테면 "장금이가 어디가 부실해?"라는 밋밋한 대사를 "아니, 우리 장금이가 부실하다니? 왜 어디가 부실하단 말이야?"로 바꾸고 억울해 못살겠다는 표정을 곁들이는 식이다. 그러니 짧은 시간 출연해도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밖에 없다.
"하다못해 운전을 하다가도 내가 찍을 장면을 상상하며 '어떻게 하는 게 제 맛이 날까'를 고민해요. 철저하게 계산된 연기인데도 사람들이 무조건 '코믹 연기' '애드리브'로 치부해서 약간 억울하지."
'주연급 조연의 원조' '감초 연기의 대가'라는 수식어는 공짜로 얻은 게 아니다. 그는 대본을 받을 때마다 빨간 줄을 그으며 상황에 맞는 대사를 '연구'한다. 그 뿐 아니다. "유황오리를 칼로 손질해 뚝배기에 넣는 장면 같이 중요한 건 거의 내가 직접 했어. 내가 딸만 셋이라 요리엔 자신 있거든."
그렇다고 그의 '재창조 작업'이 모든 사람에게 먹힌 건 아니다. "1977년 김수현 작가가 쓴 일일 연속극 '당신'에 김수미씨와 신혼부부로 출현해 재미를 좀 봤어. 알다시피 김 작가는 배우가 자기 대본의 토씨 하나만 틀려도 못참는 성격이야. 밉게 보이면 다음에 안 써줄 까봐 대본에 나온 그대로 연기하려고 애썼지." 그러나 '대장금'에는 '사극의 명장' 이병훈 PD라는 그 누구보다 든든한 원군이 있었다. "내가 1969년 1기 공채 탤런트로 MBC 들어왔을 때 이 PD는 조연출이었어. 벌써 35년째 한솥밥을 먹고 있는 셈인데 드라마 '허준' 때도 그랬지만 그 양반은 내 장점을 100% 끌어내 써먹을 줄 알아."
"'대장금'은 그렇게 좋은 연출가에 훌륭한 배우, 작가가 '삼합'(삶은 돼지고기와 홍어를 김치에 싸먹는 전라도식 요리)처럼 잘 어울려 맛을 낸 드라마"라고 그는 평가했다. 또 극중 덕구 영감이 이웃들에게 장금이 자랑을 늘어놓을 때처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탤런트 이영애를 칭찬하기도 했다. "밤낮없는 강행군에 웬만한 사람 같으면 병원 신세 한 번은 졌을 법도 한데 감기 한 번 안 걸릴 정도로 자기 관리를 잘 하더라고."
2003년 9월부터 꼬박 6개월을 '강덕구'로 살았던 임씨는 6월부터는 새로운 모습으로 시청자 곁으로 돌아온다. 차기작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일대기를 다룬 MBC 드라마 '영웅시대'(극본 이환경, 연출 소원영)다. '영웅시대'에서 정회장을 모델로 한 인물인 천태산(차인표)의 아버지 역을 맡은 그는 전작들과는 달리 '땅을 하늘처럼 여기는' 가난한 농부로 책임감 강하고 자식들을 위해서는 몸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여줄 계획이다. "그래도 너무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를 연출하지는 않을 거야. 아무리 어려운 시절에도 '서민적 유머'는 늘 존재했을 테니까. 그걸 살려보고 싶어."
/글·사진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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