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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슈]히스패닉의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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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슈]히스패닉의 미국

입력
2004.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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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인구통계국은 2050년엔 미국인구 중 백인이 전체의 50%로 줄고 히스패닉계는 약 25%에 달할 것이라는 흥미로운 전망보고서를 내놓았다. 지난 해 처음 공식 통계에서 흑인을 제치고 소수인종 가운데 최대 집단을 형성한 히스패닉계의 증가속도는 놀랍다. 일부에서는 히스패닉계 인구가 현재 추세대로 늘어날 경우 스페인어가 제2의 공식언어가 되는 등 '백인의 나라' 미국이 급속히 '히스패닉계의 나라'로 바뀔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그러나 이런 우려는 여전히 백인 입장에서 히스패닉을 바라보는 백인 중심적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전후 베이비붐을 능가하는 베베붐

스페인어를 쓰는 라틴 아메리카계의 미국 주민인 히스패닉이 백인을 위협하는 새로운 미국의 주류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히스패닉계의 인구증가율은 매년 3%에 달해 다른 인종 평균(0.3%)의 10배에 이른다. 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최근(3월15일자) 인구변동속도가 이처럼 빨랐던 것은 미 역사상 최초라고 지적했고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에서 최근 전후 베이비붐에 비견될 정도의 베베(bebe, baby의 스페인어식표기)붐이 일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샌안토니아는 18세 미만 인구의 61%, 로스앤젤레스는 51%가 히스패닉계이다.

현재 미국에 사는 히스패닉계는 4,000만명을 약간 밑도는 수준이며 이중 800만∼1,000만명이 불법체류자이다. 인구통계국 분석에 따르면 2018년께 캘리포니아주에서 히스패닉은 소수가 아닌 거대집단이 된다.

확대되는 히스패닉산업

인구팽창속도가 빨라지면서 히스패닉계를 겨냥한 각종 산업도 급성장하고 있다. 히스패닉계의 평균연봉(3만3,000달러)은 전체 평균(4만2,000달러)에 비해 낮지만 소득증가율은 최고 수준이다. 히스패닉계가 소유한 기업수가 74만개, 연간 구매력은 2,300만달러에 달한다.

이런 히스패닉계의 지갑을 노려 유명회사들은 스페인어로 광고를 만들거나 히스패닉계 취향에 맞춘 특화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일례로 미국최대 식료품 체인점 크로거는 지난 해에만 180만달러를 투자해 스페인식으로 가게를 개조, 수익을 크게 늘렸다. 히스패닉계 상권도 1998년 이래 30% 이상 확대된 것으로 조사됐다.

언론산업에서도 스페인어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최근 컬럼비아대 언론대학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3년간 미국에서 발행된 영어신문의 발행부수는 11% 감소한 반면 스페인어 신문은 3배가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중요선거변수로 커지는 정치적 영향력

인구증가는 곧 표로 직결된다는 점에서 히스패닉계의 정치적 영향력은 막강해지고 있다. 미국 산타바바라 연구소는 2000년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와 앨 고어 민주당 후보의 승패가 근소하게 갈린 지역들은 대부분 히스패닉계 거주지역이라고 밝혔다. 히스패닉이 선거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번 대선에서도 양측은 히스패닉계 표심을 향해 노골적 구애경쟁을 펼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5일 빈센테 폭스 멕시코 대통령과 크로퍼드 목장에서 회담을 갖고, "멕시코계의 미국 입국절차를 간소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존 케리 민주당 유력 대선후보도 히스패닉계의 대표적 정치인인 뉴멕시코주지사 빌 리처드슨을 러닝메이트 후보군에 포함시켰다. 텍사스주나 캘리포니아주, 미네소타주 등 히스패닉계가 많은 선거구출신의 미 의원들은 이미 스페인어 과외에 열을 올리고 있다. 흡수, 절충, 독립… 3가지 시나리오

전문가들은 히스패닉이 미국을 얼마나 바꿀 것인가와 미국이 히스패닉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해 미국에의 흡수 히스패닉과 미국문화의 절충 캘리포니아주가 사실상 멕시코화하는 멕시포니아(mexifornia)의 등장 등 3가지 시나리오를 거론한다.

이들은 히스패닉계의 비중이 매우 높은 캘리포니아주나 텍사스주가 미국에 동화하지 못하고 캐나다 퀘백주처럼 분리운동을 벌일지 모른다는 것을 가장 우려하기도 한다. 하버드대 새무얼 헌팅턴 교수도 출간 예정인 새책 '우리는 누구인가'에서 미국이 둘로 쪼개질지 모른다고 경고한 바 있다.

문제는 히스패닉의 고등학교 졸업율이 57%에 불과, 흑인(80%)에 비해서도 현저히 낮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히스패닉이 늘어날수록 고졸이하 저학력자로 인해 미국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는 결국 미 정부가 히스패닉에 대해 어떤 교육정책을 취하느냐에 따라 이들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라는 시각으로 이어진다.

/정원수기자 nobleliar@hk.co.kr

● 州별 히스패닉 비율

2000년 미국 인구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히스패닉계는 미 전체 인구의 12.5%인 3,530만5,818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은 주로 미국 남서부에 몰려 있는데 멕시코와 국경이 맞닿아 있는 뉴멕시코(42.1%) 캘리포니아(32.4%) 애리조나(25.3%) 텍사스(32%)주는 특히 히스패닉 인구가 많은 곳이다. 반면 북동부 끝에 위치하고 있는 메인, 버몬트주에선 인구의 각각 0.7%, 0.9%만이 히스패닉계이다. 다만 이들의 거주지역은 미국 본토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알래스카(4.1%)와 하와이(7.2%)까지 골고루 퍼져 있다.

히스패닉계의 출신 지역을 보면 전체의 58.5%가 멕시코인과 그 자손들이다. 푸에르토리코(9.6%) 쿠바(3.5%) 출신이 그 뒤를 잇는다. 또 과반수가 넘는 55.8%가 미국에서 태어났고 나머지는 외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이다. 이들 중 여성은 48.6%다.

미국 전체 인구중 히스패닉의 비율이 점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는 이들 중 어린 세대의 비율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내 히스패닉계의 연령별 인구구성을 보면 5∼14세 21.6%, 15∼24세 20.5%, 25∼34세 18.4%, 35∼44세 14.5%, 45∼54세 8.9%, 55∼64세 4.8%, 65세 이상 4.9% 등 이다.

/김이경기자 moonlight@hk.co.kr

■"히스패닉과 新문명충돌 위험"

최근 논란을 일으킨 새무얼 헌팅턴(77) 하버드대 국제·지역연구대학원장의 '신(新) 문명충돌론'은 미국에서 중남미 출신 이민자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데 따른 불안감을 표출하고 있다. 헌팅턴이 미 격월간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3·4월호에 기고한 '히스패닉의 도전'에서 제기한 이 가설은 히스패닉이 미국의 주류와 융합할 수 없다는 비관적 전망을 담고 있다. 이는 문화적 특성이 다른 집단 간에 충돌이 생길 것이라는 그의 저서 '문명의 충돌'(1996)의 내용과 맥을 같이 한다. 그는 '문명의 충돌'에선 국제사회를 분석했지만 이번엔 미국이라는 한 국가 내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문화 집단에 주목했다.

헌팅턴은 히스패닉이 미국을 '영어권 앵글로'와 '스페인어권 히스패닉' 문명권이라는 두 쪽으로 분열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런 주장의 근거로 미국 내 히스패닉이 비영어권 이민자 집단중 최대 규모이며 미국과 가까운 중·남미 국가 출신이라 유럽 이민자들과 달리 심리적 단절감을 경험하지 않았고 한 데 모여 살며 폐쇄적 특성을 보이는 데다 이들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멕시코인들이 19세기 영토를 빼앗아 간 미국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헌팅턴은 "멕시코 이민자들에 의한 미 남서부의 '재정복'이 상당히 진행됐다"며 "이런 흐름에 의해 멕시코인들은 이 지역을 문화·언어적 자치 지역으로, 경제적 자립 지역으로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선 지나치게 비관적이고 분열과 갈등을 부추긴다는 비판론도 무성하다.

/김이경기자 moonligh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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