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 소설가' 레이몬드 카버(1938∼1988)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된다. 문학동네 출판사는 레이몬드 카버 소설 전집을 전4권으로 출간하기로 하고, 첫 권으로 초기 단편소설 22편을 묶은 '제발 조용히 좀 해요'(손성경 옮김)를 지난주 선보였다.이전에도 번역판이 나왔지만 새롭게 발간되는 카버 전집은 미국의 카버 재단과 정식으로 번역·출판 계약을 맺은 것이다.
소설가 정영문씨가 2권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을, 소설가 김연수씨가 3권 '대성당'과 4권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의 번역을 맡았으며 올해 안에 완간될 계획이다.
레이몬드 카버는 20세기 후반 미국 단편소설의 르네상스를 주도한 작가로 꼽힌다.
그는 무엇보다 현대인의 일상 아래 감춰진 모순을 날카롭게 포착해, 간결하고 정제된 문장으로 담는 데 탁월한 감각을 보였다. 약국 배달원, 제재소 직원, 병원 수위, 교과서 편집자 등 온갖 직업을 전전했던 삶의 굴곡을 작품에 담았다는 것, 그 굴곡을 참담한 비극으로만 몰지 않고 따뜻한 유머와 깊은 페이소스를 함께 끌어냈다는 것이 카버 작품의 매력이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카버의 팬으로 자처하면서 그의 소설을 일본어로 번역했고, 영화감독 로버트 알트만이 그의 작품을 각색한 영화 '숏컷'을 제작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카버가 소설화한 미국 소시민의 위태로운 일상은 초기작 '제발 조용히 좀 해요'에서 잘 나타난다. 대개 직업이 없고('야간학교' '학생의 아내'), 돈 문제에 시달리며('60에이커' '무슨 일이요?'), 결혼생활도 위기에 봉착해 있다('제발 조용히 좀 해요' '징후들'). 아내를 치장시켜 차를 팔아보려는 파산자('무슨 일이요?'), 이웃의 사생활을 엿보면서 기쁨을 얻는 부부('이웃 사람들') 등 흔들리고 어긋나는 인간관계가 원고지 10장 분량의 짧고 정제된 이야기에 담겼다.
정영문씨는 "카버 작품은 통념적인 기대를 허물어버리는 '의외성'이 특징"이라면서 "정상적이라고 생각했던 삶이 실은 허약한 토대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일깨우는 게 묘미"라고 말했다. 그는 "가지를 다 쳐내고 결정체만 남긴 카버의 문장에서 폭발력을 발견했다"면서 "그 압축된 문장에서 삶의 진실을 붙잡아내는 예리한 시선을 만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김연수씨도 "일상에 숨은 균열이나 어둠이 얼마나 존재를 뒤흔드는지 카버는 슬쩍 보여준다. 이를테면 '밤에 혼자 깨어서 무언가 노트에 쓴다'는 행위가 삶 전체를 어떻게 뒤흔들 수 있는지 그는 소설에서 스치듯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전에는 카버가 소설을 참 쉽게 쓴다고 생각했었다. 번역을 통해 문장의 깊은 속을 들여다보면서, 그가 매우 힘든 작업을 통해 소설을 생산했음을 헤아리게 됐다"고 밝혔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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