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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 춘추]마이크를 뺏고 싶던 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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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 춘추]마이크를 뺏고 싶던 심정

입력
2004.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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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사마리아'로 제54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최우수 감독상)을 받은 김기덕 감독 환영식의 사회를 보게 됐다.그러나 행사가 시작되자 마자 사회를 맡은 것을 후회했다. 축사를 맡은 몇몇 영화계 원로들의 추태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김 감독을 축하하는데 겨우 10초 정도를 할애했고, 나머지는 자신들이 한국영화를 위해 세운 업적을 떠벌리는 데 허비했다.

A씨는 거의 30분 가까이 마이크를 차지한 채, 수십 년 전 자신이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타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표현의 자유가 극히 제한되던 시절, 자신이 제도에 온몸으로 맞선 투사인 것처럼 떠들었다.

B씨는 부패로 쿠데타 세력에 의해 사형당한 임화수와 함께 이화장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을 만났던 추억을 되새기는 걸로 축사를 대신했다.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은 C씨의 추태는 경악을 금치 못할 수준이었다. 그는 주최측의 실수로 내빈 소개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리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만을 주로 토로했다.

행사 직후 나는 김 감독에게 악수를 건넨 후 곧바로 자리를 떴다. 러시아워로 한남대교를 넘기까지 약 한 시간 이상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군사독재시절 영화인으로서 그들이 어떤 길을 걸었으며, 모든 영화인들이 UIP 직배반대 투쟁을 벌이는 동안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어떤 행동을 했는지. 한남대교를 넘을 때 즈음 택시 요금이 1만5,000원을 넘어서고 있었다.

미터기를 보며 앞으로 다신 이런 행사의 사회를 보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이 무 영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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