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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64>로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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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64>로메로

입력
2004.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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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3월24일 엘살바도르의 가톨릭 대주교 오스카르 로메로가 산살바도르의 한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던 중 총탄에 맞아 작고했다. 63세였다. 살인자가 누구인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성당 앞 광장에서 거행된 로메로의 영결식에는 25만의 군중이 모였다. 영결식장에서 또 폭탄이 터져 혼란 속에서 40명이 죽었다. 그 뒤에도 엘살바도르에서는 정치적 동기에 의한 살인이 끊임 없이 일어났다.로메로가 침대 위에서 선종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그가 총탄을 맞기 수 해 전부터 예견돼 왔다. 산살바도르 대주교로서 그는 군사정권의 인권 침해와 이 나라 농민·노동자들의 비참한 경제 상황에 대해 쉼 없이 목소리를 높여왔다. 사회경제적 불의는 이 나라에서 낯선 일이 아니었다. '구세주'라는 뜻을 지닌 엘살바도르에서는 로메로가 태어날 무렵에 이미 열네 개 지주 가문이 토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 뒤 연이은 군사정권들은 지주들과 결탁해 농민과 노동조합의 생존권 운동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 뒤편으로는 늘 미국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로메로는 라틴아메리카 해방 신학자의 주류는 아니었다. 사실은 그 반대였다. 1942년 로마에서 서품식을 치른 로메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65)가 세속 사회에 대한 교회의 관심을 북돋운 뒤에도 사회정의 문제보다는 알코올이나 마약, 포르노그라피의 추방에 더 관심을 보인 보수적 성직자였다. 그가 만년에 가난한 자 편에 서게 된 것은 이 보수주의자의 무딘 영혼마저 찢어놓을 정도로 민중의 상황이 참혹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성서의 가르침을 온전히 받드는 일이기도 했다. "주님은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높이셨으며, 배고픈 사람은 좋은 것으로 배 불리시고 부유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루가 1:52∼53).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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