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오십 여 년 전 일이다.6·25 때 부산 어귀까지 후퇴했던 국군이 우리 동네 문턱까지 진격해 왔다. 나는 피란을 못 가고 서울 근처 경기 양주군 구리면 망우리 집에 숨어 있었다. 수일 전부터 멀리서 쿵쿵 하는 소리가 온종일 들렸다. 인천 상륙을 위한 유엔군의 함포 사격 소리였다.
서울 수복 전날 동네 앞 국도에는 수많은 인민군 내무서원, 정보원으로 보이는 사복 차림의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그런데 인민군 장교와 병사 수 명이 집에 들이닥쳤다. "어마니 동무 조금 있다 올 테니 날래 주먹밥 만들어 주소"하면서 한 자루쯤 되는 쌀을 내 놓았다.
어머니와 누님이 허둥대며 밥을 지었다. 한 시간쯤 뒤에 나타난 이들은 주먹밥 몇 보따리와 양동이 물을 들고 쏜살같이 사라졌다.
근처에서는 콩 볶는 듯한 총소리가 들려왔다. 뒷산에는 태극기가, 건너편 동네에는 인공기가 날리고 있었다. 밤이 되어 갑자기 뒷산 쪽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나서 문을 열어 보니 건장한 병사 한 명이 우뚝 서 있었다. 무섭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국군이 틀림 없었다.
"너 학생이니?" "네." "몇 학년이냐?" "중학교 삼학 년이에요." "난 경복중학교 오학년 다니다 군대에 나왔다." 그리고 나서 그는 어머니가 깨진 큰 바가지에 담아 준 신 김치를 받아 들고 산 쪽으로 사라지며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학교는 다르지만 같은 학생이라는 데서 친근감을 느꼈다.
그날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국군과 인민군 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날이 밝아오자 군인 수십 명이 나타나 동네 사람 다 모이라고 소리쳤다. 동네 사람을 에워싼 군인 하나가 말했다. "이 동네에 학생 있나?"
이 때 내가 "네"하고 손을 들었다. 우리 동네에는 학생이 세 명 있었는데 두 명은 손을 들지 않았다. "어느 학교야?" "한성중학교 삼학년입니다." "응? 너 이리 나와. 이 새끼 빨갱이 아냐?"하면서 그는 정강이를 걷어찼다. "너 잘 만났다. 한성! 순 빨갱이 학교 다니는 너 정말 빨갱이지?"하면서 총구를 내 머리에 들이댔다.
그 군인은 "이 동네 빨갱이들이 인민군한테 밀고해 국군이 참호 속에서 17명이나 죽었다"고 외치면서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나는 "살려 주세요. 나 빨갱이 아니에요"하면서 총구를 손으로 틀어막고 울부짖었다.
이 때 산 쪽에서 "쏘지마, 쏘지마!"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그 애는 내 후배야, 쏘지마, 쏘지마!"를 외치면서 산 언덕에서 붕붕 날아오듯 단숨에 내 앞에 나타났다. 어젯밤에 우리 집에서 김치를 얻어간 그 군인이었다. 목숨을 김치 한 바가지와 바꾼 날이었다.
임 문 순 건국대 명예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