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의 아우성이 들려온다. 늦봄같이 볕이 따갑다가도 갑자기 초겨울처럼 싸늘하게 돌변하는 변덕스런 날씨도 이젠 기가 꺾였다. 밀려드는 봄 소식에 산천이 숨가쁘다. 매화와 산수유가 절정에 도달하자 뒤를 이어 또 다른 꽃무리들이 남녘에서 출발하고 있다.벚꽃이다. 매화와 산수유가 터놓은 길 위로 연분홍의 화사한 옷을 입고 피어 오르는 벚꽃. 봄꽃 중 가장 화려하면서도 가장 덧없는 꽃이다. 한꺼번에 흐드러지게 꽃망울을 터뜨렸다가 10여일도 못돼 사그라들고 만다. '10일 천하'인 셈이다. 그래서 일본의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꽃으로 여겨졌다. 대의명분을 위해 한 순간 불타 오르다 속절없이 목숨을 버리는 사무라이와 닮았다면서.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허망한 짓인지 알아차렸다. 그래서 '사쿠라'는 야바위꾼, 사기꾼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 제국주의 상처가 아문 지금, 벚꽃은 다양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누군가는 인생의 무상함을, 누군가는 권력의 덧없음을, 또 누군가는 청춘의 찬란함과 사랑의 불꽃을 발견한다. 우리의 심성대로 벚꽃을 대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벚꽃길 100리 벚꽃이 예년보다 4∼5일 일찍 찾았다. 3월에 폭설이 내리는 등 날씨가 요동을 쳤지만, 기온은 전체적으로 평년 이상이었던 덕분이다. 2월 평균 기온은 평년보다 2.3도 높았다. 보통 벚꽃은 남해안 지역에서 4월초 개화하는데, 올해는 3월말부터 꽃망울을 터뜨릴 기세다. 제주도는 이미 19일께부터 연분홍 꽃으로 물들었다.
전남 영암군을 찾았다. 벚꽃 명소로 따지면 좌도에 진해가 있다면 우도에 영암이 있다. 전남 영암읍내에서 819번 지방도를 따라 세발낙지 골목으로 유명한 독천리까지, 다시 2번 국도를 따라 대불산업단지에 이르는 100리길이 온통 벚나무로 가득하다. 영암을 찾은 19일, 길가는 벚꽃세상의 전야제 같은 분위기였다. 나무들은 곧 터질 것 같이 부풀어 오른 꽃망울을 아슬아슬하게 머금고 있다. 이번 주말부터 하나 둘 피기 시작해 4월 초면 절정에 달할 전망이다.
이곳 벚꽃도 예년에 비해 일주일 가량 일찍 찾아왔다. 때문에 영암군 관계자들은 오히려 초조하다. 벚꽃 개화기에 맞춰 열리는 왕인문화축제 일정을 다음달 9∼12일로 잡아놨기 때문. 이미 해외에까지 축제 일정이 알려져 있어 지금와서 바꾸기도 곤란한 처지다. 자연의 조화를 인간이 어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호랑이의 기세를 닮은 월출산 영암의 벚꽃이 더욱 유명세를 치르는 것은 월출산 때문이다. 사방 백리에 큰 산이 없어 들판에 홀로 선 듯한 월출산은 금강산을 떼어온 듯 기암절벽이 장관을 이루는 장대한 돌산이다. 조선시대 이중환은 '택리지'에서'한껏 깨끗하고 수려하여 화성(火星)이 하늘에 오르는 산세"라고 묘사하고 있다. 벚나무길을 따라 가며 보이는 월출산에서는 영험한 기운마저 느껴졌다. 해발 809m로 최고봉인 천황봉을 중심으로 곳곳에 돋아난 암벽 봉우리들과 굵직굵직한 능선은 거대한 호랑이가 굵은 힘줄을 자랑하며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모습 같았다.
왕인박사 유적지 벚꽃길 도중에 찾은 곳은 왕인박사 유적지다. 영암의 역사적 깊이를 보여주는 곳이다. 월출산의 한 자락인 문필봉 기슭에 자리잡은 이곳엔 왕인박사의 사당 등 흔적이 많다.
왕인 박사는 1,600여년전 일본 천황의 초청으로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 일본 태자의 스승이 된 인물. 도공과 석공 등 기술자 45명도 데리고 가면서 일본의 아스카 문화를 연 시조였다. 일본에서는 '신'으로까지 추앙 받는 인물이긴 하지만, 국내에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그만큼 국내에서는 왕인박사의 흔적을 고증하기 힘들다. 하지만 영암에는 왕인박사에 관한 각종 전설이 풍부하게 전해내려온다. 왕인 박사 유적지가 있는 구림마을은 서남해로 이르는 영산강 물줄기를 따라 바닷길이 열렸던 곳으로 일찍부터 청동기, 철기문화가 유입됐다. 고대 중국과 일본의 교역로로서 국제적인 선진문화가 싹텄던 곳이다. 왕인박사가 바로 이곳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던 것이다.
1987년 조성된 유적지에는 왕인박사 사당과 함께 그의 탄생지도 전해 내려온다. 탄생지에서 계곡 쪽으로 50m 정도 더 들어가면 성천(聖泉)이라 불리는 조그만 샘물이 있다. 여자들이 이 샘물을 마시고 목욕을 하면 왕인처럼 뛰어난 성인을 낳는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문필봉 중턱에 있는 문산재는 왕인박사가 공부했다고 전해지는 사당으로 최근 복원됐다. 월출산 산세와 어울린 풍경이 일품이다.
문산재에서 기슭을 타고 조금 더 오르면 왕인박사가 책을 쌓아 두고 공부했다는 책굴(冊窟)이 나온다. 사람 하나 겨우 드나들만한 입구에 네댓평 정도의 평평한 공간을 가진 자연 동굴이다. 책굴 앞에는 고려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석상이 있는데, 왕인 박사를 추모해 새겨진 것으로 전해진다.
영암군은 벚꽃이 피는 계절이면, 왕인박사를 기리는 문화제를 연다. 국내보다는 일본인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갖는 행사다.
/영암=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멀다. 승용차로 서울서 5시간 이상 달려야한다. 서해안고속도로로 목포까지 간 후 2번 국도로 영산호 하구둑을 건너면 영암이다. 호남고속도로로 가면 광산나들목에서 빠져 13번 국도를 따라가면 나주를 거쳐 영암에 이른다. 서울에서 영암까지 고속버스는 하루에 2대 뿐이어서 5∼10분마다 출발하는 광주행을 타고 광주에서 10분 간격으로 있는 영암행 버스로 갈아타는 게 좋다.
월출산온천관광호텔(061-473-6311)이 가장 시설이 좋다. 호텔방에서 월출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대온천탕을 갖춰 인근 주민들에게 인기가 높다. 숙박을 하지 않더라도 월출산 산행 후 피로를 풀기에 제격이다. 도갑사 지구에는 월출산장(472-0405)이 있다.
대표적인 먹거리는 낙지. 특히 갈낙탕(사진)이 유명하다. 영암 갈낙탕은 전라도 한우의 갈비를 우려낸 국물을 뚝배기에 넣고 낙지를 끓여낸 것으로 영양탕을 대신할 정도의 건강식으로 평가받는다. 작은 낙지 2∼3마리를 끓여내는 연포탕도 시원하고 담백하다. 읍내의 동락식당(473-2892)과 청하식당(473-6993), 영명식당(472-4027), 독천식당(472-3706) 등이 유명하다. 반찬으로 각종 젓갈을 내놓는다.
■영암 도기문화센터
"질박한 우리 옛 그릇의 느낌을 그대로 살렸습니다."
영암의 또 다른 자랑은 도기다. 영암군 군서면의 영암 도기문화센터는 국내 도기문화의 새로운 메카로 떠오르고 있는 곳. 바로 이곳의 전통도기인 '구림(鳩林) 도기'를 100% 황토와 소나무재 유약, 장작가마를 이용한 옛 방식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영암은 7∼9세기 통일신라시대 때 우리나라 최초로 시유도기(施油陶器·유약을 칠한 도기)가 생산됐던 곳이다. 도기에 유약을 처음 입히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그만큼 한국도자기사에서 중요한 곳이다.
그 존재가 알려진 것은 1986년과 1996년 두차례에 걸쳐 이화여대 박물관이 영암 구림리 일대의 가마터를 발굴 조사하면서. 조사결과 일본의 시유도기보다 200년 이상 앞선 것으로 인정됐다. 구림리 일대는 황토와 땔감이 풍부하고 가마터가 자리잡기에 적합한 구릉이 많은데다 서남해로 연결되는 곳이라 도기생산의 최적지였다. 여기서 생산된 도기는 중국과 일본으로 수출됐다.
영암 도기문화센터는 영암군이 영암도기의 역사성을 계승하기 위해 폐교로 방치됐던 구림중학교를 개조해 99년 개관한 곳이다. 초기에는 가스 가마를 사용했지만 지난해부터는 드디어 옛 방식의 장작가마를 활용, 전통 시유도기를 재현하는데 성공했다. 나아가 전통 도기를 현대적으로 개량한 생활도기를 생산하면서 새로운 명품 도기 브랜드로 발돋움하고 있다.
이석희 소장은 "장작가마는 가스가마와 달리 불의 세기와 각도에 따라 그릇의 색감과 광택이 다양해지는 요변(窯變·불길이나 통풍 영향으로 색깔과 모양이 변함) 현상을 일으킨다"며 "그 때문에 도기가 저마다 개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도기가 자기에 비하면 투박한 게 사실이다. 한국의 대표적 도자기인 고려청자는 세분하면 자기에 속한다. 다소 거친 입자의 황토를 1,000∼1,200도에서 구워내는 도기에 비해 부드러운 흙으로 고온(1,250∼1,350)에서 굽는 자기는 맑고 투명하면서 아름다운 무늬를 새길 수 있어 훨씬 화려하다. 영암 도기는 별다른 무늬도 없이 누르스름하다. 하지만 질박한 황토의 정서가 그대로 묻어나 오히려 옛스러움이 제대로 살아있다.
이 소장은 "질박한 도기가 친근하면서도 중후한 자연의 멋을 풍겨 아무리 봐도 싫증나지 않고, 오히려 보면 볼수록 마음 속에 스며든다"고 말했다. 장작가마에서 구운 다기세트의 가격은 30∼40만원대로 비싼 편이지만, 명품이란 입소문이 퍼지면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센터에는 또 3개의 전시실이 마련돼 청동기시대의 토기에서부터 통일신라시대의 시유도기와 현대옹기에 이르기까지 우리 질그릇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관람료 무료.
직접 도기를 빚어보는 체험도 할 수 있다. 사전에 예약을 하고 찾으면 1시간동안 전문 큐레이터의 지도 아래 황토로 자기가 원하는 모양의 도기를 만드는 체험시간을 갖는다. 아이들과 함께 꼭 한번 들러볼 만한 곳이다. 1인당 1만원. www.gurim.org. (061)-470-2556
/영암=글·사진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영암 구림마을
왕인박사의 자취가 남아있고, 통일신라시대 때 도기문화의 꽃을 피웠던 영암군 구림마을. 선사시대 때부터 사람들이 산 흔적이 발견되는 등 헤아릴 수 있는 역사만 따져도 무려 2,200여년이나 거슬러 오를 만큼 유서 깊은 곳이다.
지금도 700여가구가 모여사는 구림마을은 왕인박사 외에도 많은 인물들의 자취를 간직하고 있다. 대표적인 이는 신라말 풍수지리설의 대가인 도선국사. 마을 중간에는 도선국사가 태어나자마자 버려졌다는 장소인 '국사암'이 남아있다. 어머니가 처녀로 도선국사를 낳자 버렸는데, 뉘우치고 다시 찾아와 보니 비둘기가 도선국사를 품고 있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국사암 바로 인근에는 고려 태조 왕건의 태사인 최지몽 선생의 사당도 함께 있다.
조선시대의 문화유적도 많다. 임진왜란 때 전사한 박흡 장군의 가택인 '육우당'에선 명필 한석봉이 쓴 현판이 눈길을 붙잡는다. 구림마을은 또 한석봉이 스승을 따라와 배우고 자란 곳이다. 그 유명한 '한석봉 글씨와 어머니의 떡' 설화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한석봉의 어머니가 구림마을의 시장에서 떡장수를 했다고 전한다.
창녕 조씨의 종갓집이 풍상을 간직한 채 남아 있으며, 15세기 조선 성종 때 나주 교수(유생을 가르치는 벼슬아치)를 지낸 오한 박성건이 지어놓고 음풍농월했다는 '간죽정'도 둘러볼 만하다.
또 주민자치 규율 및 조직인 향약 대동계가 40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으며 대동계 집회장인 회사정이 남아있다. 영암군은 돌담길 조성 등을 통해 이곳을 새롭게 단장, 하회마을 못지않은 전통마을로 복원하기 위해 한창 공사를 진행중이다.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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