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벚꽃은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6∼7년 전부터 각 지자체가 관광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너도나도 심은 덕분이다. 그러나 어느 분야이든 원조가 있는 법. 오랜 세월 명소의 위치를 지켜온 벚꽃 천지로 간다. 물론 인파로 붐빈다. 그러나 꽃놀이는 꽃잎 만큼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해야 더 흥겹다.쌍계사/경남 하동군 화개면
지리산 자락의 쌍계사는 신라 성덕왕 21년(722년)에 의상대사의 제자 삼법스님이 창건한 절이다. 진감선사 대공탑비(국보 제47호)를 비롯한 수많은 불교 유물과 아름다운 진입로, 단아한 절집으로 사시사철 여행객을 불러 모으는 절이다.
가장 사람이 많은 때는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3월말부터 5월까지.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입구에 이르는 4㎞의 아스팔트 도로 양쪽으로 벚나무가 도열해있다. 모두 밑둥이 아름드리를 훨씬 넘는 건장한 나무들이다. 현재 꽃망울이 탱탱하게 부풀어 있다. 따스한 날씨가 이어진다면 이번 주말에 꽃잎을 틔우기 시작해 10여일간 하얀 나라를 연출하게 된다.
쌍계사의 벚꽃은 말 그대로 '아우성치며' 핀다. 하루 아침에 하얀 꽃터널이 생긴다. 바람이 불면 하얀 꽃잎이 날린다. 바닥에 떨어져 길마저 하얗게 만든다. 꽃하늘 아래 만들어진 꽃길인 셈이다. 그래서 이 길을 '혼인길'이라고부른다.
쌍계사 벚꽃을 남다르게 감상하는 방법. 길 옆에 화개천이 흐르고 건너편에 또 포장도로가 있다. 이 길은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 쌍계사로 직접 연결된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본다. 발 밑으로는 초록색 구렁이가 수십마리가 기어가는 듯한 차(茶)밭이 펼쳐지고 그 너머로 맑은 냇물이 흐른다. 냇물 건너편에 하얀 솜을 깔아놓은 듯한 벚꽃의 행렬이 이어진다. 화개면사무소 (055)880-2813.
남해도/경남 남해군
'주저 앉으면 그곳이 관광지'라는경남 남해도. 하지만 벚꽃철이면 주저앉을 공간마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몰린다. 섬 전체가 아예 '꽃섬'이된다. 개화시기는 쌍계사 혼인길과 비슷하다.
남해도는 섬답지 않게 길이 사통팔달로 뚫린 곳인데 이 길 어디에서나 벚나무를 볼 수 있다. 가장 나무가 굵고 화려한 곳은 남해대교를 넘어서부터 충무공 전몰 유적이 있는 곳까지 5㎞ 구간. 여기서 편안하게 벚꽃을 감상할 수 있는 요령 한 가지. 수년전 남해를 관통하는 이 도로(19번 국도)를 직선화하는 공사가 있었다. 새 길이 뚫린 후 옛 길은 인적이 드문 빈 공간이 되었다. 이 길로 들어서면 아무데나 차를 세워둘 수 있고, 가족과 산보하듯이 벚꽃을 감상할 수있다.
벚꽃은 꽃 터널 속에서 즐기는 것도 좋지만 멀리서 바라보아도 아름답다. 금산의 정상에 오른다. 9부 능선인 보리암 주차장까지 차로 오를 수 있다. 약 15분만 다리품을 팔면 금산 정상에 선다. 정상은 모두 너른 바위. 편하게 앉아 상주해수욕장 쪽을 바라본다. 가로수가 벚꽃인 19번 국도가 들을 가로질러 뻗어있다. 마늘과 보리가 본격적으로 푸른 빛을 내는 들판으로 하얀 줄이 달려간다. 초록색 하늘에 비행기가 항공 구름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삼천포에서 남해로 연결되는 다리가 하나 더 놓였지만 섬으로 들어가는 다리는 여전히 복잡하다. 어차피 원거리 여행. 늦은 밤에 들어가 섬에서 숙박하거나, 근처에서 자고 새벽에 들어가는 방법을 권할만하다. 한려해상국립공원 관리사무소 (055)863-3522.
송광사/전북 완주군 소양면
완주 송광사는 신라 경문왕 7년(867년)에 구산선문의 개산조인 보조체징선사가 창건했다. 원래의 이름은 백련사였으며 현재의 일주문이 원래 3㎞ 바깥에 서있었을 정도로 대찰이었지만 역사의 변천 속에 거의 폐찰의 지경에 이르렀었다. 순천 송광사의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중창했고 이후 계속 지눌의 법손들이 대대적인 불사를 추진했다. 승보 사찰인 순천 송광사와 맥을 같이 하는 절이다.
완주 송광사는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등 두 세자를 청나라에 볼모로 보낸 조선의 인조가 무사환국을 빌고 나라의 아픔을 불법으로 치유하기 위해 후원한 호국원찰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면 대웅전, 나한전, 지장전의 불상들이 땀과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KAL기 폭파사건, 12·12사건, 위도 페리호 침몰사건 때에 그랬고 IMF 사태가 터지던 1997년 12월에도 보름 가까이 땀을 흘리며 변고를 예견했다고 한다.
주차장 주변과 절로 들어가는 진입로 양쪽에 아름드리 벚나무가 도열해 있다. 2.5㎞의 왕복 2차선 도로이다. 벚나무를 사이에 두고 길의 한쪽엔 맑은 개울이 흐른다. 나뭇가지는 신기하게도 개울을 향해 드리워져 있다. 꽃이 만발하면 마치 여인의 긴머리가 바람에 날리듯 한쪽으로 꽃이 치우쳐서 핀다. 4월 8, 9일께 개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소양면사무소 (063)243-8005.
경포/강원 강릉시
경포는 각종 문화재와 너른 호수, 맑은 해안을 가진 종합 여행지이다. 봄이면 벚꽃이라는 보너스가 보태진다.
봄이면 경포호를 빙 둘러 심어진 벚나무에 일제히 불이 붙는다. 벚꽃은 경포대쪽으로 진입하는 길 입구부터 시작된다. 길이 넓기 때문에 하늘을 완전히 덮는 꽃터널은 형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 벚나무는 축축 길게 드리워진 가지가 일품이다. 경포호의 물이 잔잔하다면 꽃 군락의 반대편에서 감상한다. 호수 위로 피어있는 하얀 벚꽃은 물 속에서도 핀다.
밤에 찾으면 더욱 좋다. 꽃철이면 가로수의 불을 환하게 밝힌다. 오렌지빛 가로등의 빛을 받은 꽃무리의 색깔은 여운이 있는 기억으로 남는다.
영동고속도로의 직선화와 확장으로 강릉은 서울에서 무척 가까운 여행지가 됐다. 퇴근 후에라도 훌쩍 떠나 꽃과 밤바다를 감상하고 늦은 밤에 돌아올 수도 있다. 경포도립공원관리사무소 (033)640-4468.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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