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국회를 비난하는 여론에 대해 '언론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탄핵안 가결 후 지지율이 크게 떨어지자, 방송의 '편파 보도론'을 비롯해 촛불시위 '동원론' 등을 내세웠다. 누군가 이런 사태를 치밀하게 계획했다는 '음모론'도 나온다.푸코의 담론(談論)이론은 원래 지식과 권력의 관계를 설명하는 이론이지만, 언론 보도가 시민의 현실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에도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다. 왜냐하면 사회적으로 발생한 사건이 현상을 파악하는 인식의 새로운 기준으로 작용하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성립된 담론이 시민의 가치판단에 영향을 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삼각형 내각의 합이 180도라는 것은 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진리이고 다른 주장을 허용하지 않는 힘을 발휘하지만, 지구가 평면이 아니고 둥글게 존재함을 인정하는 비(非)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더 이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최근 여론의 변화는 탄핵이란 사건이 시민으로 하여금 국회의 긍정적 역할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감을 상실케 하고, 새로운 인식 틀로 국회에 대한 평가와 지지 정당을 크게 바꾼 것으로 요약된다. 통상적으로 국회의 담론을 수용해온 시민 담론이 이번에는 정반대로 나타난 원인은 크게 언론의 세 가지 환경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언론의 자유가 확대되면서 대통령과 그 측근에 대한 비판과 폭로가 활발해졌고, 부패를 조기에 진화하고 최소화했다는 점이다. 언론이 정권 초기 6개월 정도는 비판을 자제하는 '허니문'이 사라진 결과, 적지 않은 대통령 측근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둘째, 언론 영역의 다양화로 과거 국회 담론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확대해온 과점 신문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시민 담론을 지향하는 다수의 신문과 방송, 그리고 인터넷 매체의 영향력이 확대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특히 인터넷은 시민의 현실인식에 신속성과 전문성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촛불집회의 매개체로 작용하면서 국회 탄핵담론의 확산을 막았다.
셋째, 정부의 대선자금 수사와 언론의 정치인 부정부패 보도로 인해 고정관념(Stereotype)화한 '차떼기' 담론이 국회 탄핵 결정의 근거와 정당성을 약화시켰다. 시민 담론은 '탄핵의 대상'인 국회가 내린 대통령 탄핵소추 결정을 수긍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처럼 국회 담론을 거부한 시민 담론의 형성에 언론 보도가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편파보도'나 '음모'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부패한 대통령 측근을 조기에 솎아내고, '차떼기' 국회의원의 비리를 밝히고, 국회가 다수의 힘을 앞세워 탄핵소추를 가결한 과정을 충실히 보도한 데 따른 것이다.
국회는 설득력이 약한 '언론 책임론'에 매달리기보다 이제라도 스스로의 담론을 건강하게 형성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언론이 특정 사건에 대해 제공하는 인식 틀 가운데 어느 것을 수용할 것인가는 시민의 판단과 선택에 달려있고, 그 근거는 국회가 그동안 행해 온 역할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산대 매스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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