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 인생에도 볕들 날 있다." "꼴찌도 일등 할 수 있다."지난 22일 일본 고치(高知)현 고치시 경마장. 한 경주마의 역주 모습을 보려고 전국에서 1만3,000여명의 팬들이 모였다. 11마리의 말들이 출발하자 팬들은 일제히 마번 5번을 단 '하루우라라'(화창한 봄·사진)를 응원했다. 하지만 경주 결과는 10위. 팬들의 열화 같은 성원에 일본 최고의 기수 다케 유타카(武豊·35)가 올라타 고삐를 당겼지만 참패였다.
8살 난 암말 하루우라라는 1998년 데뷔 이래 이날로 106연패를 기록했다. 지금까지 2등 4회, 3등 6회를 제외하고는 거의 매 경주에서 꼴찌를 기록했다. 이름과 달리 '화창한 봄날'은 단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인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도 회의중 경주 결과를 보고받고 "또 졌느냐"고 탄식했을 정도로 이 말의 경주 결과는 국민적 관심사다. 사진집, 캐릭터 인형, '하루우라라의 노래' CD 등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고, 영화제작도 결정됐다.
만년 꼴찌인 이 말이 인기를 끄는 데는 이유가 있다. 팬 대부분은 일본 사회의 낙오자들이다. 조기 퇴직당한 회사원, 입시에 실패한 수험생, 도산한 중소기업 경영자 등등…. 그다지 인생에서 성공하지 못한 이들은 이 말에 자신들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다른 말보다 작은 몸집으로, 무려 106연패를 기록하면서도 열심히 달리는 이 말은 낙오자 신세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팬 자신들이다. 팬들은 경마장에서 마치 자신에게 '언젠가 성공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불어넣으려는 듯 하루우라라에게 '간바레'(힘내라)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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