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멸치잡이 업계를 대표하는 경남 통영 기선권현망 수협. 1919년 창립 이래 매년 전국 건멸치 생산량의 70%를 유통시켜온 이곳 관계자들은 요즘 걱정이 태산이다. 수온이 상승하자 난류성 어족인 멸치가 몰려들면서 어획량이 크게 늘어나 가격이 곤두박질치고 있기 때문이다. 통영 기선권현망 수협의 최근 멸치 위판량은 하루 50톤. 지난해 이맘 때의 두 배 수준이다. 한반도가 온대에서 아열대로 변하고 있다. 기온은 지난 100년 사이 1.5도나 상승했다. 수온도 마찬가지다. 국립수산과학원이 이달 초 우리나라 연근해 수온을 측정한 결과, 평년에 비해 0.5∼1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영상 수산과학원 해양연구팀 연구원은 "연안 수온이 1도 오른 것은 사람의 체온이 1도 가량 높아진 것과 같은 큰 효과를 낸다"고 설명했다. 기온과 수온이 상승하면서 곳곳에서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지난 4일 오후부터 서울에 내린 눈은 18.5㎝로 3월 역대 하루 적설량 중 최고를 기록했다. 1904년 관측 시작 이전에는 비교치가 없으니 '100년만'이라는 수식은 사실 부정확하다. 수 백년, 아니 수 천년만의 폭설일 수도 있다. 5일 충청과 경북 지방에 내린 눈도 곧바로 기록을 갈아치웠다. 한달 전 2월 최고 기온을 경신한 것이 불과 엊그제 일처럼 느껴지는데 기록적인 3월 폭설이라니…. 우려 섞인 얘기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이뿐 아니라 역대 최고 일강수량 기록 870.5㎜를 세운 2002년 태풍 루사, 역대 최고 기록인 60m 강풍을 동반한 지난해 태풍 매미 등 기상극값이 연일 바뀌고 있다.
기상이변은 월평균 기온이나 강수량의 경우 30년에 1회 정도의 확률로 발생하는 현상을 말한다고 세계기상기구(WMO)는 정의했다. 이 정의에 따른다면 최근 한반도는 '기상이변의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라 밖에서도 기상이변은 속출하고 있다. 독일의 뮌헨재보험사는 지난해 자연재해 관련 피해액을 600억 달러로 잠정 집계했다. 이는 2002년 550달러보다 50억 달러나 증가한 수치다. 지난 여름 유럽에서 발생한 혹한으로 인한 사망자는 무려 2만 여명에 이른다. 7, 8월에는 중국 인도 방글라데시 등에서도 폭염과 홍수로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기상이변이 이처럼 빈발하고 피해가 대형화하는 원인을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로 설명한다. 실제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 제3차 보고서(2000년)는 지난 50년 동안 관측된 대부분의 지구 온난화는 인간 활동에 기인한 것이라고 결론 내렸으며, 인위적인 기후변화는 여러 세기 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나라 기상청 기후연구소도 12일 발표한 '한반도 기후 100년 변화와 미래 전망' 보고서에서 지구온난화로 2100년대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의 기온은 6.5도 높아질 것이며, 홍수와 가뭄의 발생이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기온의 상승은 곧바로 해양 및 삼림 생태계와 우리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이런 징후는 한반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 30년간 고등어 멸치 오징어 등 난류성 어족의 어획량은 최고 6배까지 늘어난 반면 명태 대구 등의 한류성 어족의 어획량은 급감했다. 김영섭 국립수산과학원 자원연구팀장은 "최근에는 제주 남방에 주로 분포하는 아열대성 어종인 독돔, 세동가리돔 등이 남해안까지 올라오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동해안에서 아열대성 어종인 노랑가오리, 보라문어가 발견돼 화제가 됐었다.
육상에서도 식물의 분포가 달라져 식물도감을 다시 만들어야 할 형편이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평균기온이 1도 상승하면 식생대는 극지방쪽으로 약 150㎞ 이동한다. 중부 이남지방에 주로 자라는 왕대의 경우 2001년 분포지역이 19세기와 비교해 약 100㎞나 북쪽으로 옮겨졌다. 중국 남부지방이 원산지인 가중나무는 과거 한반도 충청 이남에만 자랐으나, 최근 서울 남산에서도 다수 포착되고 있다. 임종환 산림과학원 산림생태과 박사는 "기후가 더워지면 식생분포가 이동하는데, 이때 몇몇 종이 사라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기후변화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도 점차 입증되고 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아주대 예방의학교실과 함께 지난해 실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1991∼2000년 서울의 7∼8월 평균 최고기온과 평균 사망자수 추이가 대체로 비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쯔쯔가무시증 말라리아 세균성이질 렙토스피라증 비브리오폐혈증 등 기후변화와 관련이 깊은 질병들이 90년대 이후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지구온난화의 원인인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각국의 준비는 이미 시작됐다. 그러나 온실가스 방출을 줄여도 향후 50년간은 온난화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 지구온난화를 완화하는 방안에 대해 주로 논의가 이뤄져 왔으나 최근에는 온난화 진행정도를 정확히 예측하고, 산림 해수면 농업 보건 등에 미치는 영향평가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정책이 변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지구온난화가 산림 해수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부분적인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올해에는 수자원과 농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진행될 예정이지만, 아직 선진국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하다.
정용승 한국교원대 환경교육과 교수는 "지구온난화는 더디게 진행되지만, 피할 수 없는 재앙"이라며 "온난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과학적 지혜를 짜내서 범사회적·국가적으로 대처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30년뒤 대가뭄" 경고 "한국 온난화 안전지대 아니다" 잇단 보고서
'2007년 이전에 폭풍우로 네덜란드 헤이그 같은 해안 도시가 침수되며, 영국 등 북유럽은 시베리아 기후로 바뀐다. 방글라데시는 해수면 상승으로 더 이상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지역으로 변한다.' 영국의 업저버가 입수해 지난달 보도한 미국 국방부 특별보고서의 내용이다. 보고서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가상시나리오의 성격이 짙지만, 불과 20년 안에 지구온난화로 대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경고는 세계를 경악시켰다.
실제로 20세기 지구의 평균 기온은 0.6도 상승했다. IPCC는 이로 인해 21세기 말까지 해수면이 0.1∼0.9m 상승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현재 북극해의 얼음은 10년마다 15%씩 줄고 있고, 그린랜드도 매년 51ℓ의 얼음이 녹고 있다. 그린랜드의 빙하가 모두 녹으면 지구 해수면은 7m 상승해 전세계 연안도시 대부분이 물에 잠긴다.
최근 나온 한반도 관련 각종 기후변화 시나리오는 우리나라도 지구온난화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기상청 기상연구소가 12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온난화가 현재처럼 지속될 경우 2100년대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의 기온은 6.5도 상승하고, 강수량은 10.5% 증가한다. 이는 전지구 기온상승 예상치 4.6도, 강수량 증가 예상치 4.4%보다 훨씬 가파른 상승폭이다. 신경섭 기상청 예보국장은 "우리나라 기후는 평균보다 2∼3배 상승폭이 커 지구온난화 추세가 뚜렷하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복합적인 영향으로 2030년대 한반도에 기록적인 가뭄이 찾아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2002년 말 지구온난화가 삼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100년대 한반도 남부지역은 온대와 아한대림이 35% 감소하며, 한반도 전체로 봤을 때 온대림이 감소하고 아열대림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일 것으로 전망됐다. 이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최대 700만 달러의 순손실을 가져온다고 연구원은 추산했다. 연구원은 또 한반도 인근 해수면이 1m 상승하면 약 2,643㎢(전체 면적의 1.2%)가 바다에 잠기고, 이로 인해 약 120만명이 피해를 보게 된다고 예상했다.
/김영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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