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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공동善 지킴이 서영훈<1> "悔顧談"을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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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공동善 지킴이 서영훈<1> "悔顧談"을 시작하며

입력
2004.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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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는 일종의 회고담이라고 할 수 있는데, 회자를 '돌아볼' 회(回)가 아니라 '참회할' 회(悔)자로 생각한다. 내가 그리 대단한 사람이 못되므로 참회록을 쓸 정도는 안 된다. 그러나 이제 81세나 되어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것이 많고 부족한 것도 많아 '후회된다'는 회(悔), '돌아볼' 고(顧) 해서, '회고담(悔顧談)'으로 쓰려고 한다.나는 23세에 평안남도 덕천의 고향을 떠나 단신으로 남쪽에 내려왔다. 사업이나 장사, 공무원 같은 생활을 했더라면 편했을 텐데 평생동안 사회운동, 단체활동, 봉사활동, 시민활동등에 관계하지 않은 때가 없었다. 내 생활이 전부 그러했으니 앞으로의 이야기도 그런 이야기가 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또 내가 태어나 살아온 시기가 식민지 시절과 해방, 분단을 거치는 민족의 기구한 운명과 관련이 된다. 일개 필부, 농부라도 나라가 순탄치 못해 고생한 세월이었으니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고민도, 갈등도, 방황도 많았다. 훌륭한 지도자들을 많이 모셨고 본 받으려고 했지만, 내가 저항하고 비판한 분들도 있었다.

나는 정치운동이나 정치단체 활동은 안 하려고 했다. 소년시절부터 종교성이 강했다. 목사나 신부, 아니면 스님이 됐을 사람인데 어찌 된 일인지 사회에 나오게 됐다. 지금 종교는 기독교지만 과거 여러 종교에 관계한 적이 있어 평생을 매우 종교적인 생각을 갖고 살았다.

해방 전에는 무교회주의자들과 톨스토이, 간디, 해방 후엔 함석헌, 유영모의 영향을 받아 나의 사상이 형성됐다. 속세의 경쟁하는 사회에서 우수하게 돼서 뭘 해보겠다는 뜻은 없었다. 내 능력이나 소질이 비범하거나 탁월하지 못하고 공부도 많이 못했지만, 인류애나 인도주의 정신이 내 생활의 목표였고, 그런데 기여하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살았다. 청년단체에 가서도 그런 생각을 갖고 활동 했고, 정치성을 띤 단체에도 관여했지만 맞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갖고 사니 힘들고 어려웠다. 타고난 기질도 어디에 소속돼 복종하는 걸 싫어했다. 그래서 운명적으로 택한 것이 적십자사였다.

지난해 12월29일 나는 대한적십자사 총재에서 물러났다. 지금은 명예고문으로 돼 있다. 1953년 한적에 들어가 청소년적십자부장을 19년, 사무총장을 10년 동안 했고, 2001년에는 총재에 선출됐으니 적십자사가 나의 삶의 큰 줄기라고 할 수 있다. 한번 더 할 수도 있었지만 미련은 없다. 적당할 때 잘 그만 뒀다는 생각이다. 일개 직원으로 입사해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나보다 10년 연장인 선배들이 있었는데도 사무총장을 하고, 명예롭게 총재까지 했는데 더 이상 무슨 미련이 있겠는가. 180여 개 국 적십자사 총재들 중에서 내가 제일 오래 했고, 경력도 많고 나이도 많았다. 지금도 '코리아 레드 크로스'하면 '미스터 서'로 통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느 단체든, 그 장(長)을 하려고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나는 그래 본 적이 없다. 한적에 들어갈 때부터 그랬다. 1953년 부산에서 잠시 해운공사에서 공보비서로 일할 때였다.

어느 날 한적 사무총장으로 있던 현정주(玄正柱)씨가 해운공사 사장을 찾아와 나를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적십자사에 청소년부를 만드는 데 여러 사람이 당신을 적임자라고 추천했다. 다른 사람들이 그러는데 월급이 많지 않아도 당신은 할 것 같다고 하는데 맡아달라"고 했다. 훗날 사무총장이 될 때도 미리 다 뽑아 놓고 하라고 했다. 나는 눈치도 채지 못했다. 총재가 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KBS사장도 전혀 생각치 못한 자리였고 새천년민주당 대표도 내가 원해서 된 것은 아니었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이 나를 인도했다고 생각한다. 그 분이 배후에서 나를 이끌어 이 만큼 살아온 것이다. 내 능력이나 힘 때문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정당 생활을 하게 했는지는 의문이다. 그런데도 한 번 가서 경험해보라는 뜻인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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