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감독의 재능이라는 게 있는 모양이다. 영화 '허니(Honey)'가 여성 힙합 안무가의 좌절과 성공이라는 뻔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등에 소름이 끼치는 걸 보면. 백 스트리트 보이스, 어셔,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 세계적인 톱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빌리 우드러프 감독은 이 영화를 마치 90분짜리 뮤직비디오처럼 만들었다. 영화는 대형 스크린에 옮겨진 강렬한 랩과 힙합 댄스의 MTV다.허니(제시카 엘바)는 뉴욕 청소년센터에서 아이들에게 힙합 댄스를 가르치는 22세의 여성 안무가. 물론 얼굴은 예쁘고 몸매는 빼어나며 춤은 황홀지경이다. 이러니 뮤직비디오 감독 눈에 발탁되는 것은 시간문제. 허니는 예상대로 승승장구하지만 성관계를 요구하는 감독의 제안을 거절하면서 다시 파멸위기에 처한다. 영화는 이처럼 매우 단선적이다. 허니가 청소년센터 아이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힙합을 가르치고, 댄스 연습실을 구하기 위해 자선 댄스공연을 연다는 내용도 훈계적이고 판에 박혔다. 아이들의 길거리 농구와 줄넘기 동작에서 힙합 댄스의 응용동작을 발견하는 내용도 그리 참신하지는 않다.
제시카 엘바의 연기 역시 좋은 평가는 받기 힘들다. 'TV가이드' '글래머' 등 미국 유명잡지의 표지모델을 지낸 경력답게 얼굴은 매력적이지만, 춤 말고는 깊은 인상을 남길만한 절절한 연기가 없다. 남자친구(메카이 파이퍼)가 허니를 끝까지 지켜주는 이유는 또 뭘까. 단지 속된 말로 예쁘면 모든 게 용서되기 때문에?
그러나 영화의 매력은 이야기와 캐릭터에 있지 않다.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다운 발 빠른 장면전환과 화려한 색감 연출, 그리고 극중 오디오를 틀 때마다 터져 나오는 강렬한 비트 사운드에 있다. 허니가 단지 뉴욕 할렘가를 어정쩡하게 걷기만 해도 이를 좇는 카메라워크는 그대로 랩이 되고 힙합 댄스가 된다.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15세 이상. 26일 개봉.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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