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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 춘추]연구에만 전념할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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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 춘추]연구에만 전념할수 있다면…

입력
2004.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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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강사들은 지금 바쁘다. 아니 정확하게는 박사학위를 받고도 전임이 되지 못한 비정규직 교수들은 이즈음 무척 바쁘다. 학기 초에다 한국학술진흥재단 기초학문 지원사업에 제출할 연구계획서 쓰는 일이 겹쳐있기 때문이다. 하루건너 회의하고 연구 주제를 짜내느라, 잠은 부족하고 머리에는 열이 난다.그렇다고 그만 두기도 어렵다. 좋은 계획서를 내지 못해 탈락이라도 하는 날에는 한두 해를 다시 강사료로 연명해야 하는 처지가 되기 때문이다. '생계를 건 계획서'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조선 후기 '허생전'의 허생을 떠올리며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다. 전임이 되지 못하더라도 최저생계비만 보장된다면 평생 연구만 해도 좋다. 비록 허생은 마누라의 바가지를 이기지 못해 책장 덮고 일어났지만.

그런데 말이 씨가 된다고 바야흐로 그것이 현실이 되려 하고 있다. 박사 열에 한 둘만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상황에서 하고 싶은 연구를 지속하려는 학자에게 학술진흥재단의 연구비는 일종의 최저생계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연구비가 누구에게나 보장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근래 학술진흥재단의 정책 방향은 '평생 연구만 해도 좋다'는 학자들을 향해 더 넓게 문 여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연구비를 받기 위해 연구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우리 인문학의 인프라가 조금씩 구축되고 있는 건 미래를 위해 고무적인 일이다. 모름지기 좋은 문장과 탁월한 이론은 소파의 산물이 아니라 용맹정진하는 고투의 결실이다. 비정규직 시대에 학술진흥재단의 연구비가 그 고투의 좋은 도반(道伴)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은 나만의 착각일까?

조 현 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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