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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에세이/여보, 작은 것까지 사랑하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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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에세이/여보, 작은 것까지 사랑하려오

입력
2004.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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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일찍 일어나서 재활용품 좀 내다 놓으면 안돼!"출근하려고 현관을 막 나서려는데 갑자기 아내가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재활용품 분리수거일이었다. 결혼하고 나서 도맡아 해 오던 가사를 몇 주째 거른 것이다. 아침부터 꼭 이렇게 남편 기분을 상하게 해야 하나, 나름대로 집안 일을 많이 거들고 있는데…. 이런 저런 생각에 화가 났지만 꾹 참고 집을 나섰다. 아내는 이제 100일이 된 둘째 아이에게 시간에 맞춰 우유를 먹여야 하니 신경이 날카로워졌나 보다.

제법 풀린 바깥 바람이 움츠린 마음을 그나마 달래 주었다. 버스를 탔다. 다행히 직장이 도심 외곽에 있어서 버스는 언제나 한산하다. 맨 뒷자리에 앉아 낯 익은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참으로 다정한 풍경들이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나는 조금씩 늙어가고 있지만 이 모든 풍경은 앞으로도 자리를 지키고 있겠지….

몇 정거장을 지나치다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버스에 올라탔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내 바로 앞 좌석에 앉히고는 자신은 좌석 손잡이를 잡은 채 서 있었다. 두 분은 여느 노인 분들과는 달랐다. 할아버지가 할머니 쪽으로 약간 몸을 숙이더니 조용히 말을 주고 받았다. 할아버지의 입가에는 가벼운 미소가 번졌고 할머니도 행복한 표정이었다. 할아버지가 귓속말을 하면 할머니는 손을 절레절레 흔들면서 수줍은 표정을 짓기도 했다. 가만히 들어보니 아들의 주선으로 다녀온 눈꽃열차 여행에 대한 이야기였다. 두 분의 모습에는 행복감이 넘쳤다.

지금 이 순간이 두 분에게는 더 없이 소중한 시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나는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나는 정말 아내에게 잘해주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그것은 나만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평상시 아내가 했던 말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내는 큰 것보다는 사소한 것들에 좀더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이만큼 해주었으니 그저 고맙게 여길 것이라는 생각만 했으니 아내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것이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해 준 두 분에 대한 기억은 오래 남을 것이다.

/jh1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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