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랄루의 환상적인 애니메이션 '판타스틱 플래닛(Fantastic Planet)'이 30년 만에 국내 개봉한다. 애니메이션 창시자인 에밀 콜을 낳은 애니메이션의 종주국 프랑스에서 1973년에 제작된 이 작품은 기괴한 그림과 앞서가는 프리 재즈의 선율이 가득찬 명작으로 그동안 국내에 '미개의 혹성'이란 제목으로 알려졌다. 73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작.무대는 푸른 거인족 트라그가 지배하는 신비의 혹성 이얌. 수정이 이슬처럼 나무에 맺히고 귀를 날개삼아 날아다니는 생물이 사는 이곳에서는 옴이라 불리는 인간들이 트라그에게 애완 동물 취급을 당하며 살아간다. 옴은 살아남기 위해 트라그의 학습 도구를 훔쳐 스스로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 무서운 번식력에 학습 능력까지 갖춘 옴에게 두려움을 느낀 트라그는 급기야 옴 박멸계획을 세우고, 이 음모를 사전에 알아챈 옴은 일제히 저항한다.
프랑스 공상과학(SF) 소설가 스테픈 울의 '대량 출산의 옴족'이라는 소설이 원작인 이 작품은 인류 문명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로 가득하다. 옴을 벌레 죽이듯 발로 짓밟아 죽이는 트라그의 모습에는 폭력에 물든 인류의 모습이, 트라그와 옴의 싸움에는 날로 가열되는 현대 사회의 문명 충돌이 그대로 드러난다.
르네 랄루는 러시아의 유리 놀슈테인, 이탈리아의 부르노 보제토와 더불어 세계 3대 애니메이션 거장으로 꼽히는 인물. 그는 셀 애니메이션이 아닌 종이를 이용한 애니메이션으로 명성을 얻었다. 종이 애니메이션은 배경이 되는 종이판을 잘라 놓고 장면 변화에 맞춰 캐릭터의 동작을 일일이 그려준다. 꼼꼼한 수작업에 의존, 섬세한 표현이 가능하지만 그만큼 작화가의 기본 실력이 없으면 제작이 불가능하다.
그의 첫 번째 장편인 이 작품 역시 걸출한 애니메이터 롤랑 토포를 포함해 25명의 작화가가 3년 반 동안 매달려 그림을 그렸다. 작품을 보면 데생을 보는 듯 밑그림이 드러나고 만화처럼 여러 번 겹칠해 명암을 표현하는 펜 드로잉 기법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요즘 나오는 매끈한 그림과 원색이 화려한 컴퓨터 애니메이션에 비하면 거칠고 촌스럽게 보이지만 수작업의 편안함이 느껴진다. 반면 종이 애니메이션의 한계 때문에 표정 변화가 다양하지 못하다. 그림과 더불어 영화를 살린 음악은 재즈 음악가 알랭 고라게가 맡았다. 50년대 중반부터 음악활동을 해온 그는 이 작품에서 펑키 리듬의 프리 재즈를 선보여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문제는 무거운 주제와 난해한 그림이 이어지다보니 골수 애니메이션 애호가가 아니면 지루하게 보일 수도 있다. 특히 트라그가 옴을 죽이는 잔혹한 장면과 남녀를 불문하고 상반신을 드러내놓고 다니는 옴의 모습은 어린이보다는 성인 취향이다. 12세가. 4월9일 개봉.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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