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군이 22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지도자 셰이크 아흐마드 야신(66)을 살해함에 따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은 연쇄 보복 공격의 공포에 휩싸였다.야신이 살해된 직후 하마스 지도부는 "지옥의 문이 열렸고,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의 목을 치겠다"며 보복을 다짐했다. 수 천명의 팔레스타인 주민들도 야신이 쓰러진 자리에서 대 이스라엘 항전을 외쳤다. 피의 보복이 임박했다는 게 현지 분위기다. 이스라엘은 즉각 전군에 비상경계령을 발동하고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통하는 모든 관문을 폐쇄했다.
이로 인해 물밑에서 추진돼왔던 이―팔 정상회담은 당분간 물 건너 간 듯하며 미국 대선의 쟁점이기도 한 중동평화안 이행도 상당기간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야신과 그가 이끄는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각별한 사랑을 받아왔고, 이스라엘이 하마스 지도부 전체의 와해를 지향하고 있다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있는 요르단강 서안과 달리 가자지구는 자치정부 영향력보다는 하마스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이며, 평생 이곳을 근거지로 저항활동을 해온 야신은 지역 주민들의 영웅이었다. 하지만 샤론 총리는 이번 기회에 반드시 하마스 지도부를 제거하겠다는 입장이다. 사울 모파즈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21일 "하마스 지도부를 약화시킬 계획을 마련 중" 이라고 내각에 보고한 지 하루 만에 이뤄진 이번 공격에 대해 이스라엘 군 관계자들은 "며칠간 야신의 동태를 살펴왔다"면서 이번 공격이 하마드 공격의 신호탄임을 강조했다.
내년 9월까지 가자지구 내 이스라엘 군과 7,500명의 정착민을 철수시키는 계획을 추진 중인 샤론 총리는 철수 후 가자지구가 무장투쟁의 본산으로 전락할 것을 우려하는 내각 강경파들의 목소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하마스는 이스라엘군이 철수하면 선거에 참여해 가자지구를 합법적으로 접수할 계획이다.
아흐메드 쿠레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총리는 "이번 공격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했다. 무장단체들이 뭉쳐 이스라엘에 보복하는 피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그런 와중에 중동 평화안이 묻히는 사태를 우려하는 장탄식이다. 중동평화안을 제안했던 미국도 비슷한 우려를 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 야신은 누구
셰이크 아흐마드 야신(66)은 사지 마비로 평생 휠체어에 의지하면서도 팔레스타인인의 무장투쟁을 역설한 저항 지도자였다.
1938년 팔레스타인 마을 알 주우라에서 태어난 그는 48년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고향이 초토화하자 가자지구로 이주했고 12살 때 운동 중 머리를 다치면서 사지를 쓸 수 없게 됐다.
청년시절 이집트 카이로의 알 아즈하르 대학에서 이슬람 신학을 공부하면서 '무슬림형제단' 등의 저항정신을 흡수했다. 가자지구로 돌아온 그는 무슬림형제단 팔레스타인 지부를 만들었고 이 때문에 83년 이스라엘 당국에 의해 체포돼 2년간 복역했다.
야신은 87년 1차 팔레스타인 인티파다(봉기) 당시 야세르 아라파트의 온건노선에 반대하는 무장단체 하마스(정열이라는 뜻)를 창설하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으나 89년부터 8년간 다시 이스라엘 감옥에 갇힌다.
야신은 평화는 지하드(성전)와 저항을 통해 얻는 것이라며 평화 노력을 거부해왔다.
/이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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