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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탄핵사태는 진짜 승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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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탄핵사태는 진짜 승부가 아니다

입력
2004.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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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반대 촛불집회 인파가 서울 도심을 메운 지난 주말, 나라 바깥에서는 이라크 전쟁 1년을 맞아 50여 개국 500여 도시에서 반전시위가 물결 쳤다. 대규모 파병국인 이탈리아의 로마와 스페인 마드리드 및 바르셀로나에서는 수십 만 시민이 전쟁반대와 철군을 외쳤다. 전쟁 주도국 미국의 뉴욕과 영국 런던에서도 수만 명이 부도덕한 전쟁을 위해 국민을 속인 부시 대통령과 블레어 총리를 규탄했다.이날 서울 대학로에서는 5,000명이 반전집회를 가진 뒤 광화문의 탄핵반대 시위에 참가했다. 탄핵정국 와중에 범세계적 반전행동의 날에 동참한 것은 가상하지만, 열기와 관심은 그다지 높지 않아 언론도 건성으로 보도했다. 대통령 구하기, 민주주의 수호가 절박한 마당에 전쟁과 파병의 묵은 이슈에 신경 쓸 겨를이 있냐고 반문할 것이다. 파병에 앞장서 직접 종군하겠다던 늙은 국회의원이나 파병에 반대해 사퇴하겠다던 젊은 의원도 모두 탄핵공방에 사생결단하고 매달린 판국이니 언뜻 맞는 말이다.

그러나 온 국민이 현란하게 바뀌는 옛날 만화경 구멍 속을 들여다보듯이 나라 안 정치다툼에만 함께 매진하는 것은 아무래도 후진적이다. 평소 여야 의원들이 심심찮게 격투를 벌여 우리의 긍지를 살려주던 대만이 총통 선거에서 혼미한 난장판을 연출한 것이 우연치 않은 다행으로 느껴질 정도다. 애초 치졸하고 저열한 정치싸움에서 비롯된 탄핵사태에 국민이 분연히 일어나 세상 변할 줄 모르고 무모한 수구 야당을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만든다고 해서, 이 땅의 정치와 민주주의가 과연 환골탈태할까 싶은 것이다.

전쟁과 파병 얘기로 되돌아가자. 반전 여론을 다시 불지핀 스페인 열차폭파테러의 여파로 집권우파가 총선에서 철군을 공약한 좌파에 예상밖에 패한 것은 국민을 기만한 탓이다. 우파 정부는 국익을 앞세워 국민 90%가 반대하는 파병을 강행했다. 이 때문에 총선 코 앞에 200여명이 희생된 테러가 발생하자 파병 연계성을 덮기 위해 서둘러 바스크 독립투쟁세력의 소행으로 규정했다가 알 카에다 관련성이 드러나는 바람에 민심을 한꺼번에 잃었다.

스페인의 좌파 집권에 따라 당장 스페인 군 1,300명이 철군할 가능성이 높고, 테러에 놀란 다른 파병국도 잇따라 철군 얘기를 꺼내고 있다. 이탈리아 다음으로 많은 2,500명을 선뜻 파병한 폴란드 대통령조차 미국의 거짓말을 비난하고 나섰다. 여론을 무마하려는 계산과 함께, 이라크 재건특수 참여 기대를 미국이 외면한 데 대한 불만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의 바탕에는 알 카에다 소행 여부가 아직 불확실한 테러 공포 이전에 부도덕한 전쟁에 대한 도덕적 각성과 평화 의지가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강요를 이기지 못하거나 정치경제적 이익을 좇는데 급급했던 중남미 소국조차 위선적 선택을 지속하지 않으려 한다는 얘기다.

사회가 온통 탄핵논란에 매달린 마당에 한가하게 전쟁과 파병을 논한 뜻은 탄핵정국에서 승리한 듯한 대통령과 여당, 그를 지지하는 국민까지도 나라와 사회의 진정한 도덕적 개혁과 정치다툼의 승부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엉뚱한 기우로 치부할지 모른다. 그러나 위선적 명분을 내건 파병이 마땅한 주둔지를 찾지 못해 헤매는 꼴이 됐는데도 그 정당성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 정부와 국민이 나라 안 문제에서만 도덕성과 정당성을 독점한 듯이 자부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표방한 이념과 정책을 쉽게 저버리거나 모호하게 얼버무린 사례는 숱하다. 전쟁과 파병에 대한 태도와 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국익 때문에 과거 소신이나 지지계층의 여망과 다른 길을 선택한 것보다, 정략적이고 위선적 면모를 보인 게 훨씬 본질적인 문제다. 이는 부안사태를 비롯한 사회경제 정책에서 되풀이 지적됐다. 어찌 보면 공연한 정치싸움인 탄핵사태는 노 대통령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진정한 승부처가 아니라는 사실을 모두가 깨달아야 한다.

강 병 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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