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3월23일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1980년 몰(沒). 1970년대에 저서들이 여럿 번역돼 한국 독자들에게도 익숙한 프롬은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를 종합해 유물론적 사회심리학을 모색한 첫 세대 이론가였다. 그 자신 대학에서 가르치는 틈틈이 정신분석가로서 환자들을 치료하기도 했다.프롬의 저서 가운데 가장 널리 읽힌 것은 '자유로부터의 도피'(1941)일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봉건제로부터 자본제로의 이행이 인간을 대지와 공동체로부터 소외시키면서 불안감과 두려움을 확산시켰다고 진단했다. 근대 산업 사회에서의 이런 고립감이 개인들로 하여금 타인에 대한 의존을 통해 소외를 극복하려는 무의식적 욕망을 낳았고, 이것이 파시즘 같은 억압적 사회 질서 안에서 마음 든든함을 얻으려는 충동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권위에 절대 복종하면서도 약자에게는 지배적으로 행동하는 권위주의적 성격이 이런 문화적 맥락 속에서 빚어졌다고 프롬은 판단했다.
프롬은 프랑크푸르트 사회조사연구소의 일원으로 본격적인 지적 이력을 시작했지만, 나치즘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이후 그의 정치적·이론적 입장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다른 비판이론가들과 사뭇 달라졌다. 그는 자신이 민주사회주의자임을 공언했고, 마르크스주의의 휴머니즘적 요소를 강조했다. 195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까지 프롬이 옛 동료 허버트 마르쿠제와 벌인 격렬한 논쟁은 세계 학계의 눈길을 끌었다. 마르쿠제는 프롬의 이론적 우경화를 비판하며 그에게 신프로이트 수정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였고, 프롬은 마르쿠제가 허무주의자, 유토피아주의자라고 맞받았다. 마르쿠제는 다시 프롬을 관념론자로 몰았다. 예컨대 '사랑의 기술'(1956)에서 드러나는 사랑이라는 가치의 선양은 마르쿠제가 보기에 지배적 관념론의 소산이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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