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신 정부가 알 카에다의 테러 공격에 대해 이라크 주둔군을 철수하겠다는 식으로 반응함으로써 우리는 9·11 이후 가장 위태로운 순간에 직면해 있다. 이는 악의 축이 유화(宥和)의 축 및 무능의 축과 결합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악의 축 얘기부터 해 보자.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은 이라크 및 모든 곳에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죽이려 하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에서 실패를 거듭하고 있고 이라크는 내전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못됐다면 우리는 왜 좀더 잘해 내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옹고집과 많은 동맹국들의 멍청함 때문이다. 부시 팀 얘기부터 하자면 이라크에 우리 병력이 충분치 않다. 그랬던 적이 없다. 국방부는 애초부터 이라크전을 기동성이 뛰어난 소규모 하이테크 군대로 승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할 실험 케이스로 취급했다. 뭐, 사담 후세인이야 그런 식으로 패배시킬 수 있겠지. 그러나 이라크 군도 해산시킨 마당에 그렇게 적은 병력으로 새 이라크를 건설하고 외국인 테러리스트가 흘러들지 못하도록 국경까지 통제할 수는 없다.
바그다드의 우리 외교관들이 무장 차량, 위성전화, 방탄조끼, 경호 인력이 부족한데도 이 전쟁을 값싸게 치르고 있지 않다고 우기지 말라. 우리는 지금 세금 감면 전쟁과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부시의 두 거대 프로젝트가 안고 있는 모순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이라크에서 실패한다면 이라크의 안전을 확보하지 못한 펜타곤의 무능이 가장 큰 원인이다. 그 무능 때문에 이라크인들은 안전을 위해 분파주의 민병대를 조직하게 됨으로써 국가 건설을 저해하고 내전의 씨앗을 뿌리게 된 것이다.
둘째로 진짜 동맹국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예가 보여주듯 우호적인 국가가 얼마 되지 않았다. 유럽과 아시아인의 대부분은 결코 부시 팀 쪽에 서지 않았다. 특히 부시 팀이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낼 것이라고 계속 우길 때 그랬다.
부시 대통령이 대량살상무기라는 믿기지 않는 논거를 포기하지 않으면 대량학살을 자행한 사담 후세인 체제를 종식시키고 이라크 인민의 파트너가 되어 아랍 무슬림 세계의 심장부에 정상적이고 온건한 정부를 세우겠다는 전쟁의 정당성에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테러리즘과 이슬람 극단주의의 근원은 바로 아랍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악정(惡政)이다.
스페인은 자기네 군대가 아랍권에서 최초로 민주주의 건설 실험을 지원하고 있는 마당에 이라크에서 철수함으로써 악의 세력에 유화책을 쓰는 미친 짓을 하려 하고 있다.
나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이 내일이라도 마드리드 폭탄 테러에 대한 대응 조치로 새로 연합군 5,000명을 이라크에 파견해서 이라크 최초의 민주적 선거를 감시할 유엔 대표단이 바그다드에서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하기를 바란다.
스페인이 이라크에서 철수함으로써 서구문명에 대한 알 카에다의 공격에서 안전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다. 오사마 빈 라덴은 스페인이 한 때 무슬림의 통치를 받았으며 그런 통치를 회복시키고자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카이로의 한 친구는 내게 보낸 이메일에서 스페인이 이라크에서 철수하겠다고 한 데 대해 체임벌린 영국 총리가 1938년 히틀러와 뮌헨협정을 체결하고 돌아온 뒤 처칠이 한 말이 떠오른다고 했다. "당신은 전쟁이냐 불명예냐 중에서 선택해야 했다. 당신은 불명예를 택했고, 그래서 전쟁을 맞게 될 것이다."
토마스 프리드먼 NYT 칼럼니스트
/뉴욕타임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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