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서초동에서 3년째 법률사무소를 운영 중인 L(34) 변호사는 최근 자신이 직접 '원고'가 돼 소송대리를 맡긴 의뢰인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내기로 결심했다. 사건 수임 건수가 갈수록 줄어드는 마당에 그나마 수임했던 10여건의 소송 수임료마저 제때 받지 못해 사무실 운영이 어려워지자 소송을 내 수임료를 받아내기로 한 것이다. 지방에서 개업한 지 8년이 지난 K(43) 변호사는 "IMF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며 "최근 두 달 동안 한 건도 수임하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변호사 절반가량 적자 운영
변호사수가 6,000명을 넘어서고 장기 경기 침체까지 겹치면서 불황을 모르던 변호사 업계에 한파가 몰아닥치고 있다. 21일 서울지방변호사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 동안 서울 지역 변호사들이 수임한 소송 건수는 17만9,800여건으로 회원 3,700여명 1인당 평균 48.6건으로 나타났다. 이는 IMF 사태 이전인 1997년 70.2건에 비해 무려 20여건 이상 감소한 것이다.
반면 변호사는 97년 3,300여명에서 2002년 사법시험 합격자 1,000명 시대를 거치며 지난해 7월 6,127명으로 2배 가량 증가했다.
이 같은 현상은 지방일수록 더 심하다. 수원지방변호사회에 따르면 지난 2월 한 달 동안 소속 회원 변호사 9명이 사건을 단 한 건도 수임하지 못하는 등 회원 변호사(법무법인 소속 제외) 가운데 47%의 사건 수임 건수가 3건 이하로 나타났다. 변호사들은 사무실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수임건수를 4건이라고 보고 있는데, 절반가량이 적자운영을 하고 있는 셈이다.
대형 로펌은 대형사건 덕에 성업
반면 대형 로펌이나 개업한 지 2년이 안된 전직 판·검사 등 '상위권' 변호사들로의 '사건 쏠림'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불법 대선자금 사건 등 대형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정치인, 기업인 등 거물급 의뢰인들이 늘어났기 때문. 구속 여부, 양형 등 판사의 재량이 큰 형사사건의 경우 '전관예우'를 기대할 수 있는 대형 로펌과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거의 독식하다시피 해 변호사업계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더 심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변호사 업계에서는 '생계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까지 요구하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김호정 책임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적정 변호사 수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에서 "이제는 증원이 아니라 변호사 수의 유지 혹은 감축을 논의해야 한다"며 "사시 정원을 500명선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한변협 김갑배 이사는 "송무 업무에 국한하지 말고 정부, 기업, 시민단체 등 변호사들이 다양한 분야로 진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하며 변호사들도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성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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