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치러진 총통 선거의 후유증으로 대만이 전례 없는 국가 위기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천수이볜(陳水扁·민진당) 현 총통에 근소한 차로 패한 야당의 롄잔(連戰·국민당) 후보가 선거 결과 불복을 선언, 정국은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게 됐다.20일 밤 천 총통 당선이 발표된 직후 야당 후보와 야당 지지자들은 즉각 총통관저 등으로 뛰쳐나와 부정선거를 규탄하면서 재검표 및 재선거를 요구하고 있다. 어정쩡한 미봉책으로는 성난 민심을 누그러뜨리지 못할 분위기이다.
선거불복의 직접적 원인인 개표 부정 의혹은 야당을 거리로 내몰기에 충분해 보인다. 투표 마감 후 발표된 한 방송국 투표구 조사 결과에서는 롄잔 후보가 53%의 득표를 거둬 47%의 천 총통을 이기는 것으로 나왔고, 롄잔 후보는 개표가 골고루 이뤄져 당락이 뒤집혀지기 어려운 개표율 75% 시점까지 5만 표 정도를 리드했었다. 하지만 개표율 85%를 전후로 역전됐고, 여기에 당락을 가른 2만 9,518표보다 11배나 많은 33만 7,297표의 무효표 존재는 부정 의혹을 더욱 부채질했다. 무효표의 3분의 1가량은 타이베이현 등 야당 표밭 3곳에서 나왔다.
아울러 개표시 롄잔 후보와 천 총통의 득표 결과가 뒤바뀐 사례가 나오고, 피격사건으로 발동된 국가보안체제로 20만명의 군·경이 투표에 참가할 수 없다는 점도 롄잔측이 제기하는 대표적인 의혹들이다.
특히 천 총통의 동정표를 결집시키는 데 결정적 촉매로 작용했던 천총통 저격 사건을 둘러싸고 자작극 논란이 증폭되고 있지만 수사기관의 미지근한 태도로 보아 범인이 자수하거나, 결정적인 제보가 나오기 전에는 진실이 밝혀지기는 어려울 듯 하다.
대만 법률가들은 대체적으로 재검표가 불가피하고 선거무효소송도 가능하다는 입장이고, 대만 선관위도 법원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밝혔다. 결국 플로리다주 검표 시비로 법원이 당락을 결정했던 2000년 미국 대선처럼 법원이 칼자루를 쥘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법원의 결정이 어느 쪽으로 나든 야당의 불만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워 대치 정국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 선거로 두 동강 난 민심도 더욱 사분오열할 것이 분명해보이며 대외신인도 추락, 대 중국 관계의 불안정 등 값비싼 대가도 치러야 할 듯 하다.
미 CNN방송은 "대만은 위기국면으로 빠져들었다"고 보도했고, 뉴욕타임스는 "이번 선거는 정치 안정과 사법부의 중립성을 시험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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