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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고기는 먹지 마라?

입력
2004.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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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데릭 시문스 지음·김병화 옮김 돌베개 발행·2만8,000원

인간의 식탁에 오르는 음식은 대략 5,000가지라고 한다. 그 중 고기(육류)는 인간에게 고 단백질을 제공하는 가장 효과적인 음식이다. 하지만 육류라고 다 먹는 것은 아니다. 각 지역의 문화에 따라 선호하거나 기피하는 종류가 각양각색이라는 점에서 나름의 세계관, 종교관, 인생관을 담고 있는 상징적인 그릇이라 할 만하다. 인도인들은 소를 숭배하기 때문에 먹지 않지만, 아프리카 마사이족은 그 고기를 같은 이유로 주식으로 삼는다. 한국인은 개고기를 좋아하는데, 유럽인은 이를 두고 야만인 취급을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즐겨 먹는 돼지고기를 유대인과 이슬람교도는 불쾌하게 생각하고, 동부 아프리카에서는 닭고기와 생선을 비천하고 구역질 나는 고기라고 여긴다. 같은 동물을 두고도 존경-경멸, 사랑-혐오의 대상이 되고, 같은 이유로 먹거나 먹지 않기도 한다.

'이 고기는 먹지 마라?'는 역사·문화사적 관점에서 육류에 대한 기피현상의 기원과 확산과정을 찬찬히 짚어간다. 대상은 개, 돼지, 소, 닭, 낙타, 말 등 인류와 가장 가까운 가축 6종과 생선이다.

문화권에 따라 가장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 대상은 개와 돼지다. 우선 힌두교와 불교에서는 개를 사악한 찌꺼기 청소부, 불길하고 불결한 동물로 보았으나 고대 이집트에서는 성스러운 존재로 추앙하기도 했다. 아무튼 개는 동물 중에서 가장 일찍 가축이 된 만큼 그 식용의 역사도 길고 먹는 사람도 많다. 식용 역사는 기원전 5000년까지 올라가고 지역도 중국과 시베리아, 하와이, 동남아시아 등에서 널리 퍼져있다.

역사상 개고기를 가장 좋아한 민족은 중국인이다. 고대에는 개고기가 제례에 올랐고, 왕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티베트에서는 중국인들을 '개고기 먹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광둥성에는 '찐빵은 개를 무서워하고, 개는 광둥 사람을 무서워한다'는 속담도 있다. 홍콩에서도 개고기를 '향기로운 고기' 또는 '뿔 없는 염소'라며 즐긴다. 아랍인들도 개를 불결하다고 생각했을 망정, 여성들이 개고기를 먹어야 전형적인 풍만함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고 20세기까지 그 관습을 유지했다.

고대 유럽에서도 개를 먹은 증거들이 많다. 그리스인도 개고기 수프를 여러 질병의 치료약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17세기까지 강아지 고기를 별미로 여겼고, 20세기 초 한해 동안 독일에서 8,000마리의 개가 식용으로 도살됐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에 이르러서는 애완용 개가 많아지면서 거부감이 커졌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돼지고기 기피현상의 중심지는 근동지역이다. 기원전 450년경에 살았던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이집트인들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고, 돼지를 치는 사람과는 접촉하지 않았으며, 혹시라도 돼지와 몸이 스치기라도 하면 나일강으로 달려가서 옷을 입은 채 강물에 뛰어들어 씻었다고 기록했다. 당시 다신교를 믿던 이집트에서 돼지가 적대적인 신의 상징동물이라는 점이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기피현상은 이슬람교와 유대교를 거치며 강화된다. 저자는 이들의 돼지고기 거부현상의 배후에 유목민족의 전통이 숨어있다고 본다. 이슬람교도들은 정착민이 선호하는 돼지에 반감을 가졌고, 유대교도들은 유목적 전통 외에 타 종족과 자신을 구별하고자 하는 동기에서 기피했다는 분석이다.

저자는 인도에서 소를 경배하는 것에 대해서도 다른 해석을 제기한다. 소가 농경에 필요한 동물이므로 식량으로 사용하는 것보다는 노동에 종사시키는 것이 이익을 남기기 때문에 도살을 금지시켰고, 종교적 교리의 지지를 받았다는 기존의 관점을 단순한 해석이라고 비판했다. 오히려 불교와 종교적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달걀과 닭은 기독교에서 생명과 부활을 상징하지만 아프리카에서는 금기의 대상이다. 특히 콩고지역에서 가임연령의 여성들은 달걀이 불임이나 난산의 원인이고, 최음효과가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믿음이 차별적인 식량분배 체계를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여성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저자의 결론은 철저히 문화 상대주의적인 관점에서 음식문화를 봐야 한다는 것. 그는 서구인들이 메뚜기나 개고기, 말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힌두교도가 쇠고기를 먹지 않는 것만큼이나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지금도 미국인들이 말만 들어도 까무라칠만한 요리들이 사장되고 있는 것은 사람들의 편견 때문이라면서, 이런 음식을 마음 놓고 먹을 때 음식 복지는 개선되고 요리에서 얻는 즐거움도 커진다고 보았다.

지리학자로서 음식문화에 대한 저자의 접근법은 학술적이면서도 각종 사례 중심으로 구성돼 있어 술술 읽힌다. 1961년 초판 발간 후 94년에 개정판으로 나온 이 연구서를 음식에 관한 한 누구보다 편견이 심한 서구인들에게 권하고 싶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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