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회 안익태작곡상 공모에서 대상을 차지한 박태종씨(36·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는 당선 소식을 전하자 연신 '정말이냐, 믿기지 않는다'며 기뻐했다. 전날 로또에 당첨된 꿈을 꾸고, 무슨 좋은 일이 있으려나 하면서도 개꿈이려니 했단다."6개월 동안 곡을 썼는데, 마감 당일에야 부랴부랴 완성해서 접수 마감 3시간 전에 겨우 제출했지요. 그런데 나중에 다시 들여다보니 컴퓨터로 작업한 악보에 왠 오타가 그리 많은지. 망신이다 싶어서 속으로 창피했어요. 그런데 당선이라니, 심사위원들께 감사할 뿐입니다."
수상작인 '오케스트라를 위한 카프리치오'는 연주시간 16분 정도의 3관 편성 관현악곡으로, 조성음악의 특징(3도 구성화음)과 나란히 현대음악의 출발인 초기 무조성음악의 특징(4도 구성화음)을 근간으로 한 작품이다.
'변덕스러움'을 가리키는 '카프리치오'의 말뜻 그대로 작곡가 자신의 다양한 감정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펼치고 있다. 삶이라든지 우주·철학·인류애 등등 거대 담론을 표현한 작품이 결코 아니며, 현대음악 작곡 방식의 하나인 수학·과학·철학 등 음악 외적 지식과 개념을 따른 것도 아니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곡의 전개 방식도 기본 모티브의 변주와 발전이라는 고전적 수법을 적극 사용했다고 덧붙였다. 흔히 현대음악 하면 조성파괴나 기법실험을 떠올리게 되는 일반적 경향과 달리 조성을 많이 배려하고, 고전적 원리에 충실한 곡을 쓴 데 대해 그는 '감상할 만한' 작품을 쓰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훌륭한 작곡가도 많고 작품도 많은데, 현대음악은 왜 인기가 없고 유통이 잘 안 될까 고민해봤어요. 너무 머리를 앞세운 탓이 아닐까요. 현대음악은 철학적이어야 하고 거대담론을 말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우는 기본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저급하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습니다. 하지만 음악은 그 자체로 받아들여져야 하고 작곡가와 연주자, 청중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지나치게 복잡해서 즐길 수 없거나 이해를 강요하는 음악은 몇몇 전공자만 찾는 도서관 보관용 밖에 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곡을 '심플'하게 쓰는 훈련을 했다. 이번 작품에서도 누가 들어도 뚜렷이 부각되는 리듬과 귀에 와닿는 선율을 만들고 악기 간의 제스쳐도 복잡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인문계 고교를 나와 7년여 동안 악몽 같은 사회 생활을 하다가 26세 때 비로소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1기로 입학하면서 본격적인 작곡 공부를 시작했다. 중학생 시절인 15세 무렵부터 음악에 뜻을 두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음대 진학이나 레슨 받는 것을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음악은 책을 보며 독학했다. 그리고 지금은 대학원을 마치고 모교 시간 강사로 일하고 있다.
남보다 힘들게 먼 길을 돌아서 작곡가가 된 그로서는 이번 수상이 꽤 큰 격려가 될 만하다. 그 동안 작곡 콩쿠르에 응모해본 적도 없는데, 첫 도전으로 대상을 차지했으니. "이제야 기본 공부를 끝내고, 음악계에 첫 발을 딛은 셈입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 심사평
이번에 제출된 12개의 작품은 현대 작곡에 대한 많은 지식과 기법을 이해한 가운데 쓴 곡들이었다. 하지만 상당수 작품이 아직도 1970, 80년대 유럽에서 유행했던, 이제는 상식적인 기법들에 젖어있다는 것은 아쉬운 점이었다. 많은 기법에 의존하여 곡을 쓰다 보니 음악의 중심 사상을 잃었고, 자기 소리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모습을 찾기 어려운 점이 없지 않았다.
당선작인 박태종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카프리치오'는 비교적 단순한 리듬과 구조를 가지고 있으나, 곡 전체를 관통하는 자기 주장과 음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높이 평가된다. 여백을 생각하다 보니 힘이 줄고, 힘을 얻으려고 무리하게 악기를 동원해 색깔을 잃는 부분은 작곡가의 좀 더 세심한 배려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악곡 전체적인 균형을 잃지 않아 좋은 구성력을 보여 주었으면서도, 군데군데 대조적 부분에서 기복이 심한 것도 극복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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