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환(1861∼1905)은 구한말 순국지사로 전해지고 있다. 호조판서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이 과거에 급제한 그는 1895년 일제가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주미 전권대사 부임을 거부하고 낙향했다. 그 후 관직에 복귀한 그는 독립신문을 후원하고, 일본의 내정간섭에 항거하다 좌천당하기도 했다. 마침내 1905년 일제가 우리의 외교권을 빼앗아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고종에게 파기를 상소하고 뜻이 이뤄지지 않자 자결했다. 1962년에는 건국훈장이 추서됐다.여기까지는 우리가 국사 시간에 배운 내용이다. 하지만 최근 젊은 국사학자 3명(김윤희 이욱 홍준화)이 펴낸 '조선의 최후'(다른세상 발행)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실려있다. 동학농민전쟁 주도자인 전봉준이 그를 민영준 고영근과 함께 매관매직에 앞장선 대표적인 부패관료로 지목했다는 사실이다. 후손이 들으면 펄쩍 뛸 이야기이지만, 저자들은 "우국지사 충정공이 부패관료의 괴수로 지목됐던 것은 당시 조선 지배층이 지니고 있던 아이러니"라며 조선의 패망과정에 얽힌 정치적, 경제적, 외교적 상황을 샅샅이 파헤친다.
이들은 조선의 멸망을 가장 슬퍼하고 오열했던 계층은 일반 백성이 아니라, 그들의 고혈을 빨아먹던 일부 지배층이었음에 주목한다. 나라를 말아먹는데 앞장선 사람들이 나라를 빼앗겨 더 이상 기득권을 유지할 수 없게 되자 땅을 쳤다는 것이다. 민영환이 과연 그런 부류였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와 근거는 이 책에서 제시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당시 지배층의 축재 관행이 일반화했고, 일제 앞잡이로 나섰던 사람들도 있었던 것을 고려하면 그는 상대적으로 양심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항일 경력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부패 부분은 감춰진 것은 아닐까. 항일 행위가 모든 것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없다. 그가 죽은 지 100년 가까이 흘렀지만 정확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툭하면 국민을 앞세우면서도 부정부패를 일삼는 일부 정치인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최진환기자 cho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