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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美 대학생 융자금은 "노비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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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美 대학생 융자금은 "노비문서"

입력
2004.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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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대 의과대학원을 졸업한 알렉스 다우니(30)씨는 교수가 되려는 꿈을 일단 접기로 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받은 융자금 때문이다. 그는 부모에게서 학비를 지원 받을 수 없어 정부기관이 제공하는 학비 융자 프로그램으로 과정을 마쳤다. 3년 전 대학문을 나설 때 갚아야 할 융자금은 10만 달러로 불어나 있었다.전공의를 하면서 받은 박봉을 쪼개 융자금을 갚아갔지만 결혼을 하면서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 정도로 생활의 압박을 받아왔다. 아내와 상의한 끝에 2∼3년간 병원에 취직, 융자금을 갚고 난 뒤 박사과정을 밟는 것으로 진로를 수정했다. 그러나 그는 일단 학업을 중단하면 다시 돌아가기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미국의 학생들에게 학비 융자금은 구원이자 속박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부모에게 학비를 의존하는 대신 정부나 금융기관이 제공하는 이자율이 비교적 저렴한 융자금을 얻어 학업을 지속한다.

그러나 졸업할 때쯤 융자금 상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부담으로 다가온다. 현실을 앞에 두고 진로를 수정해야 하는 학생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정부지원 학자금 융자기관'넬리 매이'의 2002년 미 전국 학생융자 조사 보고에 따르면 대학 및 대학원 졸업생 5명 중 1명은 융자금 상환 부담 때문에 진로를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비영리 기관, 공익 변호사, 정부기관 등 공공 분야와 예술 문화 분야에서 일자리를 구하려는 학생들에게 융자금은 그들의 이상과 포부를 꺾게 하는 '노비 문서'가 되고 있다.

뉴욕대 법과대학원 공법학 부학장 데보라 엘리스씨는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와의 인터뷰에서 "입학생들에게 장래 공익 변호사가 되기를 원하느냐고 묻는다면 절반 이상이 손을 들 것"이라며 "그러나 졸업할 때쯤이면 같은 질문에 손을 드는 학생은 몇 명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과 대학원 졸업생을 공익 분야로 끌어들일 목적으로 설립된 비영리 기관 '평등정의작업'이 3년차 학생 1,6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3분의 2가 융자 빚 때문에 상대적으로 보수가 적은 공익 분야나 공무원 자리 진출을 주저하게 된다고 답했다.

클리브랜드의 보험회사에 다니는 앤젤 팍스는 한때 오하이오 콜럼버스의 캐피털대 법학대학원에서 공익 변호사로의 꿈을 키웠었다. 생활비를 절약하기 위해 버려진 농가에서 지내기도 하고 장례식장의 방 하나를 세내 살기도 했지만 스스로 도울 길이 없는 사람들을 돕겠다는 일념에서 그 길을 착실히 준비했다.

1992년 법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그녀는 공익 변호사 자리를 제의 받은 날 동시에 보험회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녀가 진 빚은 6만 달러. 노트북을 꺼내 매달 갚아야 할 상환액을 따져 본 그녀는 보험회사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팍스씨는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에서 "그 순간 영혼을 파는 파우스트 박사를 떠올렸다"며 "융자만 없었다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1990년대 초반 이래 학비융자 부담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진로 선택에 대한 학생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1997년 1만1,400달러였던 대학생 평균 융자금 액수는 2002년엔 1만8,900 달러로 66%가 올랐다. 대학원생 융자금은 1997년 2만1,000달러에서 2002년엔 3만1,700 달러로 뛰었다. 법대나 의대 대학원생이 안고 있는 융자액은 9만1,700 달러에 이른다.

정부에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공익을 위한 파트너십'의 맥스 스티어 회장은 "요즘 학생들에게 학비 부담이 미치는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며 "오늘의 젊은이들은 한 세대 전이라면 선택할 수 있던 공공 분야의 일자리를 엄청난 빚 때문에 포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공익분야와 민간 회사의 임금 격차가 날로 커지면서 공익분야에 종사하려는 학생들의 마음은 더욱 흔들릴 수밖에 없다.

미변호사협회(ABA)에 따르면 1991년부터 2001년 사이 공익법률 분야 초임은 2만5,000달러에서 3만5,000달러로 37%가 올랐지만 학비는 76%가 뛰었다. 그러나 민간분야의 초임은 같은 기간 5만 달러에서 9만 달러로 80%가 올라 학비 증가액을 웃돌았다.

남가주대 학생처장 리사 메드씨는 "1992년 내가 법대를 졸업할 때는 공익분야에서 2만 8,000달러를 받았고 내 친구는 법률회사에서 6만 달러를 벌었다"며 "이제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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