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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탄핵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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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탄핵정국

입력
2004.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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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수의 속옷이 또 히트를 쳤다. 골 세리머니 때 마다 속옷 글귀로 눈길을 끈 그가 이번엔 "대한민국이여 일어나라"라고 외쳤다. 골문을 멋지게 공략한 뒤 포효하며 던지는 메시지라서 재미 있고 강렬하고 공감도 크다. 엊그제 밤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올림픽 축구 예선전에서 이 선수가 날린 슛은 홈경기 불패라는 이란의 축구사를 40년 만에 바꾼 것이라고 한다. 그의 골은 그래서 드라마틱한 쾌감을 더하지만, 못지않게 그의 짧은 글귀가 쏘는 시원한 메시지가 더 없는 선물처럼 눈에 띈다. 소용돌이에 휩싸인 국내 정정(政情)에 명쾌하게 적중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단순한 표현이 상황에 맞으면 가장 강력한 표현이 된다. 사실 이 선수의 말은 옛날 새마을 운동에나 맞을 선전구호 류이다. 그런데도 이 말은 시원하고 강하게 느껴진다. 박관용 국회의장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하면서 "대한민국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전진해야 한다"고 했던 것과도 다른 느낌이다. 이 선수가 스포츠맨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의 탄핵정국이 분열과 증오의 싸움판에 함몰돼 있고, 과정과 전망이 대단히 복잡해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나와야 할 결론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긴 어느 누가 이를 부인하겠는가.

■ 그러나 이 혼란은 3월12일 갑자기 온 것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분열과 증오는 지난 1년 내내 있어 왔고, 누적되고 압축되다 지금 폭발적 국면으로 전개되고 있을 뿐이다. 야당은 권력경쟁에서 패배한 상실감을 씻지 못했고, 대통령은 야당이 다수파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도덕성의 잣대로 야당에 대한 우월감을 가졌지만, 야당의 잣대는 권력에 요구되는 도덕성이었다. 대통령에게 야당은 파문당한 집단과 다름 없었지만, 야당에게 대통령은 분수를 알아야 할 소수파에 불과했다. 탄핵정국을 헌법기관끼리의 권력갈등으로 볼 필요가 있는 배경이다.

■ 이런 상호부정은 결국 헌법적으로 터지고 말았다. 역사가 사건으로 만들어진다면 이번 사태에서 그 사건은 11일의 대통령 기자회견이다. 여기서 노무현 대통령이 예의 사과를 깨끗이 하고 말았다면 탄핵안 가결을 감행할 명분과 배짱이 야당에게 있을 수가 없었다. 사과로 될 일을 탄핵까지 몰고 갔느냐는 야당에 대한 비판은 사후적 소재이다. 노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무시했던 야당은 그 날 바로 국회였고, 이는 삼권분립 상 헌법기관 간의 충돌 현장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국회가 이를 용납할 수 없었던 사정은 바로 탄핵소추로 현실화했다. 헌법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도록 돼 있는 것이 불행인지 불찰인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같은 헌법이 두 권력간의 다툼을 판단할 헌법재판소를 최종·상위 권위로 규정했으니 이를 따르면 될 일이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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