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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총선 "친노·반노" 대결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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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총선 "친노·반노" 대결 안된다

입력
2004.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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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내일 모레인데 분위기는 영 아니다. 총선은 왔는데 총선 같지 않으니 봄이 왔는데 봄 같지 않은 느낌과 다를 바 없다. 탄핵 정국이 총선 정국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일까. 지금 광화문 촛불시위에 모인 사람들, 서명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콩밭에 있다. 탄핵 찬반 시위를 하며 헌법재판소를 향해 외치는 소리는 큰데 막상 야무진 선량을 뽑겠다는 결의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이번 총선을 목표로 출발한 시민단체들의 낙선·당선운동도 탄핵 찬반 논란 속에 묻혀 버렸다.이러다 이번 총선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는 기우일까. 그것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는 총선이 대선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은 대통령 못지않은 헌법기관이며 법을 만드는 국회는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와 더불어 국가의 쌍두마차다. 이와 입술의 관계처럼 한 쪽이 잘못되면 다른 쪽도 성치 못하다.

일반론을 떠나 총선에 관심을 가질 만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는 낙천, 낙선운동으로 국회 물갈이에 성공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16대 국회는 수많은 구속자를 양산한 '죄 많은 국회'가 되고 말았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총선시민연대가 사람을 잘못 고른 것인가, 아니면 그때는 괜찮았는데 사람이 변한 것인가? 하기야 국회에 입성한 사람은 확실한 상품이라기보다는 약속어음과 같은 존재일 터이다.

이제 정말 사람을 잘 보고 뽑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걸림돌이 있다. '노무현 일병 구하기'와 '노무현 일병 버리기'로 첨예하게 맞서 있는 분위기 때문이다. '친노·반노'가 총선의 쟁점이 되면 인물 선거도 정책 선거도 물건너간다. 친노 세력이 열린우리당을, 반노 세력이 한나라당, 민주당을 찍는 식으로 될 때 정당 선거가 무슨 의미를 가질까.

특히 유권자들이 친노·반노에 올인 하면 자기 선거구에 출마한 후보자들에 대한 따끈따끈한 정보까지도 마다할 가능성이 크다. 가뜩이나 정치적 정보는 공공재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 사유재의 성격을 갖는 경제적 정보와는 달리 얻으려는 의지가 별로 없다. 휘발유 값이 1,400원을 넘었다는 소식은 광고 없이도 모두가 아는 공지의 사실인데 지역구 의원이나 지방의회 의원 이름 석자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정보 제공 운동까지 벌여야 할 판인데 더더구나 무지가 미덕이 되는 기막힌 상황이 되는 것이다.

특히 심각한 것은 총선이 탄핵 찬반 구도로 치러지면 소수 정당들이 설 땅을 잃는다는 점이다. 봄의 들판이 아름다운 것은 다채로운 꽃들이 피어나기 때문이다. 우리 국회도 유권자들의 정치적 선호나 이념적 색채에 따라 다양하고 정교하게 구성돼야 하는데 친노·반노의 대결 구도는 작은 꽃, 이름 모를 꽃들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선거가 유권자의 다양한 이익보다 친노·반노 선호만을 대변하게 된다면 심각한 민의 왜곡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바로 우려되는 사안이다.

총선은 '총선답게' 치러야 한다. 총선은 대선이나 탄핵 정국 제2라운드가 아니며, 선량을 뽑는 절차에 불과하다. 선량을 뽑으려면 인물 됨됨이도 알아야 하고 정책적 성향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후보자를 친노와 반노의 대리인으로 보기보다 차분한 마음으로 꼼꼼하게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그럴 여유와 의지가 있는가?

교육이 교사의 질을 넘어가지 못하듯이 국회도 유권자의 질을 넘어가지 못한다. 이것이야말로 유권자들이 뜨거운 가슴으로 탄핵 정국에 전념하기보다 차가운 머리로 총선에 임해야 할 이유이다. 내일 이 세상에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탄핵 정국에서 한발 물러나 선량을 뽑겠다는 일념으로 총선에 '올인'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 효 종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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