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차분한 마음으로 탄핵 사태의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단순하게 표현하면 대통령과 국회의 극한 대립이 끝내 양자 간에 해결되지 못하여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한 결과 헌법재판소가 최종 판단을 내리게 된 것이다.우리가 이번 사태를 정치적 교훈으로 삼으려면 앞으로 대통령과 국회가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제도적 조건과 리더십의 자질 등을 찾아보아야 한다.
첫째, 대통령 지지 정당의 국회 의석수가 너무 적으면 대통령이 국회의 협력을 얻기 어려운 것은 물론 국회의 견제를 방어하는 것마저 매우 어려워진다는 교훈을 얻었다. 작년 9월 노 대통령 소속당인 민주당이 분당한 결과 그를 지지하는 열린우리당은 국회 전체 의석의 17.3%에 불과하기 때문에 반대세력이 탄핵에 필요한 재적 의원의 3분의 2을 훨씬 넘어서게 됨으로써 탄핵이 제도적으로 가능하게 된 것이다.
각국의 대통령제를 연구한 학자들(메인웨어링, 슈가트 등)은 대통령 지지 세력이 의회에서 3분의 1 이하로 떨어지면 대통령이 헌법상 막강한 권한을 가졌어도 의회의 협력을 얻기 어렵기 때문에 자신의 정치적 프로그램이나 대선 공약을 입법화해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 바 있다. 노 대통령도 헌법상 긴급명령권, 대통령이 거부한 법안을 재의결하려면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는 강력한 비토권, 법률안 제출권, 행정입법권, 인사권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국회 지지가 매우 약해져서 이런 권한을 행사하는 데 어려움이 컸다.
특히 정치권의 지지가 약한 경우 대통령이 국회나 정당을 우회하여 국민과 시민사회의 직접 지지를 얻어 통치하려는 유혹을 느끼게 됨으로써 대의제 민주주의에 위협이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작년 12월 노 대통령이 노사모 집회에서 "시민혁명"을 주창한 것은 이런 경향을 보여 준 대표적인 사례다.
둘째, 우리 정당은 자체 개혁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국가적 중대 사안을 심의하고 결정하는 과정이 아직도 원시적이다. 예를 들어 각 정당이 탄핵과 같은 중대한 사안을 결정하는 과정은 통상적인 당론 결정 절차나 과정과 달라야 하는데 이런 점을 소홀한 감이 있다. 앞으로 중대 사안의 경우 당원과 국민의 의사를 수렴하는 절차와 당내 결정 과정을 엄격하게 해야 한다.
셋째, 이번 탄핵 사태는 대통령―국회 관계에서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국회는 다수가 합의해야 정치적 결정을 내릴 수 있지만 대통령은 혼자서 결단을 내려 국정의 흐름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양자 간의 대립을 방지하려면 설득과 타협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반대당이 의회를 장악한 상태에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설득과 타협을 통해 의회의 협력을 얻어내는 데 성공한 사례는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탄핵안 가결 전날, "사과할 수 없다"고 한 노 대통령의 매우 공격적인 스타일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이처럼 국회의 지지가 약할수록 대통령은 타협과 설득의 노련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넷째, 대통령의 임기와 관련된 정치적 제안은 대통령제를 불안정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는 교훈을 얻었다. 한국 대통령제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가 연계돼 있지 않다. 각자가 임기 동안 소신껏 국정을 운영한 후 다음의 별도 선거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재신임 국민투표 제안, 불법 대선자금 10분의 1 발언, 총선 결과와 자신의 진퇴를 연계시킴으로써 대통령제 헌정 질서의 핵심이 흔들리게 되었다.
이러한 교훈들을 바탕으로 정치권이 앞으로 대통령―국회 관계를 원만하게 만들어야 대통령제 민주주의를 정착시킬 수 있다.
김 용 호 인하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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