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 신채호(1880∼1936) 선생이 1921년 중국에서 발행한 순한문 월간지 '천고(天鼓)'의 번역·해설서가 출간됐다. 최광식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가 펴낸 '단재 신채호의 천고'(아연출판부 발행)는 독립운동 관련 보도나 논설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당시 독립투쟁의 실상과 국내외 정세를 소상히 알 수 있는 것은 물론, 단재의 초기 역사관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하늘의 뜻을 울린다'는 뜻의 천고는 1921년 1월부터 제7권까지 발간됐지만 실물이 확인된 것은 제1∼3권이다. 베이징(北京)대 도서관 귀중본 서고에서 자료를 열람·복사한 최 교수는 이 중 제1, 2권의 내용을 우리말로 쉽게 옮기고 전체적인 설명과 각주를 덧붙였다. 고대사 관련 글인 '고고편'은 3권의 내용까지 이번 역주에 포함했다. 그 동안 천고의 내용은 제1권 일부만이 1977년 간행된 '단재 신채호 전집'의 별집에 수록되어 알려졌었다.
특히 관심이 가는 것은 단재의 고대사 인식이다. 단재는 '신지(神志)'라는 필명으로 쓴 '고고편'에서 국수론의 위험을 지적하면서도 우리의 경우 이를 버리면 삼보(三寶)를 버리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조선시대 이후 역대의 역사를 기록할 때 기자로부터 시작하여 부여를 빼버렸다. 지리를 논할 때는 압록강까지 하고 발해는 빠진다. 옛 현인은 제사를 지낼 때 계백보다 소정방을 우선으로 하였다. 무공을 논할 때 연개소문보다 설인귀를 높이 평가하였다.' 단재는 이어 '자신의 조상을 잊어버리고 자신을 비하하여 타인을 존경한다. 그러므로 나라가 복잡해지고 화근이 되었다'고 꼬집었다. 1910년 중국으로 망명한 뒤 고대사의 무대였던 남·북만주와 백두산을 둘러보고 여러 중국 문헌을 섭렵한 뒤 형성된 단재의 역사관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밖에도 단재는 '고고편'의 '진왕'에서 부여를 한국 고대사의 중심으로 보는가 하면, '소도'에서 만주를 고대 우리 민족의 영토로, 흉노족을 우리 민족으로 인식하고 있다. 또 '승군(僧軍)' '화랑' 등의 글에서는 이 제도들이 고구려 시대의 제도를 모방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고고편'과 따로 쓴 '조선 고대의 사회주의'에서는 정전제를 사회주의 제도와 유사한 것으로 파악하면서 이 제도를 우리가 중국에 전수했다고 설명했다.
최광식 교수는 "단재의 민족사학이 동아시아적 관점을 가지고 중국 일본 만주 몽골 등 각지의 자료를 치밀하게 고증해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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