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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포용의 정치는 죽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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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포용의 정치는 죽었는가

입력
2004.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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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곧바로 국회의사당 앞에서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사람들이었다. 생각을 더듬어 보니 그들은 지난 해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북한기자들과 물리적 충돌을 일으킨 당사자였고 시청 앞 광장에서 인공기를 소각하던 사람들이었으며 최근 3·1절에 대형 성조기를 앞세우고 친북좌익세력 척결을 주장하던 사람들이었다.야당이 주장하는 탄핵 사유가 선거법 위반과 측근비리 그리고 경제파탄인 것과 달리, 이들 탄핵 지지자들의 손에 들린 피켓에는 '김정일 타도'와 '북한해방' 등의 구호가 적혀 있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상초유의 사태에 대해서는 정치적 견해에 따라 찬반이 엇갈릴 수 있겠지만 공개적으로 나서서 탄핵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른바 '반북시위'의 단골손님들이라는 점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어 보인다. 노 대통령의 정치적 리더십과 자질에 대한 문제 제기가 야당의 탄핵 저변에 흐르는 주요한 원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탄핵지지의 선봉에 선 이들은 반북시위의 대표인사들인 탓에 실제 탄핵찬성 진영은 '냉전수구 세력'이라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 이들 반북진영은 대북 포용정책이 우리 사회에 친북세력을 고무시키고 부도덕한 북한정권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고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대북지원을 중단하고 북한에 대한 봉쇄와 압박도 불사해 결국 북한내부의 봉기에 의한 민주화를 달성하는 것이 정당한 대북정책이라는 강경한 생각을 갖고 있다.

이들 '반북' 시위대들의 대북정책관이 지금의 시대상황에서 올바르지 못한 것임은 이미 증명되고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북한정권 교체나 인권개선의 문제는 이제 그 주장의 정당성이 아니라 그 방식의 효율성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맹목적인 대북 강경노선은 북한의 점진적 변화를 유도하는데 있어서 바람직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은 방식이며 남북대결을 고취시키고 민족화해에 찬물을 끼얹는 '대안 없는 흥분'일 뿐이다. 불타는 적개심을 내세워 북한체제가 문제투성이임을 알리는 것만으로는 결코 북한의 변화를 결과하지 못한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이래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은 북한에 대한 포용을 통해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증진시키고 한반도의 평화와 북한의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전략이다. 북한이 밉고 북한체제가 올바르지 못하다고 해서 오로지 그것만을 반복해서 주장하고 외치는 것으로는 북한의 변화를 결코 이루어내지 못한다. 오히려 북을 포용함으로써 당장의 한반도 평화를 달성하고 나아가 화해협력을 통해 북한 스스로 바람직한 변화의 방향을 잡아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사실상 가장 현명한 대북정책임을 이제 대다수 국민들은 동의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지금까지 북한에 대한 포용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온 것처럼, 이제 시야를 안으로 돌려 지금의 탄핵정국을 푸는 데서도 이른바 '포용의 미덕'을 발휘하길 기대해본다. 서해교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명분 없는 트집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평화와 실제적인 북한 변화를 위해 포용의 정책을 구사한 것처럼 국내정치에서도 미운 야당이지만, 명분 없는 발목잡기이지만, 정치안정과 국민화합을 위해 반대세력에 대한 포용의 미덕을 발휘했다면 탄핵과 같은 극단적인 사태는 막았을 거라는 안타까움이 남는 게 사실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모두 포용하기 힘들다면 적어도 같은 당이었고 대통령 당선을 위해 함께 노력했으며 일관되게 대북포용정책의 맥을 이어온 민주당에 대해서 만큼은 포용의 손길을 먼저 내밀 수 있지 않을까? 포용은 하기 힘들 때 먼저 하는 것이 가장 돋보이기 때문이다.

김 근 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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