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의 김래원, 영화 '장화, 홍련'의 염정아, 드라마 '피아노'의 오종록 PD. 이들이 뭉친 MBC 수목드라마 '사랑한다 말해줘'는 방송 전부터 파격적인 스토리와 영화 같은 화면으로 주목 받았다. 그러나 현재까지 '사랑한다 말해줘'의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10, 11일 방송된 5, 6회 분의 시청률은 9%대에 머물렀다. 왜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를 향해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 것일까?그들의 사랑은 과연 그러할까?
'네 사람의 눈앞에 고스란히 노출된 욕망과 유혹, 그리고 흔들림. 그 어긋난 변주의 소용돌이 속에서, 노련한 커플은 순수한 사랑의 의미를, 순수한 커플은 열정적 사랑의 의미를 동시에 깨달아 간다.' '사랑한다 말해줘' 제작진이 밝힌 기획의도다. 그러나 영채(윤소이)와 병수(김래원), 이나(염정아)와 희수(김성수) 네 명의 남녀가 벌이는 '러브 게임'은 인간의 사랑과 욕망을 내밀하게 그려내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영화사 사장인 이나는 병수를 유혹하기 위해 병수의 여자 친구인 영채까지 자신의 회사에 취직을 시킨다. 영채에게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는 병수는 이나의 갑작스러운 키스 한 번에 무너지고 만다. 그런가 하면 이나는 임신을 했다고 속여 병수에게 결혼을 요구한다. 1960, 70년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런 협박에 병수는 또 무력하게 무너진다. 이나가 왜 그토록 병수에게 집착하는지, 병수는 또 왜 이나의 유혹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없다는 건 치명적인 결함이다.
웃기지도 않고 울리지도 못한다
멜로 드라마가 아니라 시트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랑한다 말해줘'에는 코믹한 설정이 많다. 병수의 친구 석관(신승환)이나 영채의 동생 을채(조정린), 영채를 짝사랑하는 한준(이정) 등의 캐릭터는 한결같이 비현실적이다. 석관의 유일한 지상 목표는 병수―영채의 합방이고 을채는 한밤중에 이불을 걷어내고 벌떡 일어나 귤을 까먹을 정도로 잠버릇이 고약하다. 한준은 영채가 사는 울진학사 주변을 배회하며 시도 때도 없이 노래를 불러댄다.
네 명의 주인공들의 얽혀버린 애정 관계와 그로 인한 고통이 극의 중심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런 설정들은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억지스럽기까지 하다. 10대, 20대 초반의 발랄하고 풋풋한 첫사랑이 아니라 성인들의 사랑과 욕망을 그리고 있는 '사랑한다 말해줘'에서 오종록 PD 특유의 '울리면서도 웃기는' 장기가 먹히지 않는 건 당연하다.
'스캔들'과 '첫사랑 사수…'의 짬뽕
'사랑한다 말해줘'의 포스터는 배우들의 엇갈리는 시선이나 포즈가 영화 '스캔들'의 그것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내용도 '스캔들'을 빼 닮았다. 남자든 돈이든 자신이 원하는 건 무엇이든 손아귀에 넣고야 마는 이나의 캐릭터는 '스캔들'에서 천하의 바람둥이 조원과 숙부인의 정절 빼앗기를 두고 내기를 벌이는 조씨 부인(이미숙)과 판박이다. 이나는 희수에게 "김병수한테서 서영채를 좀 가져가 줘"라고 주문한다. 바람둥이인 희수는 영채를 유혹하는 데 성공하면 다시 자기에게 돌아와 달라며 제안을 받아 들인다.
그런가 하면 '사랑한다 말해줘'는 오종록 PD가 감독한 '첫사랑 사수궐기대회'의 재판(再版)이기도 하다. 병수가 초등학생 시절부터 영채를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으로 그려지는 것이나 병수·영채 커플이 잠자리는커녕 키스도 해보지 못한 성적 미숙아로 그려지는 점이 그렇다. 병수·영채 커플을 엮어주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영채 아버지 필상(박인환)을 보고 있노라면 '첫사랑 사수궐기대회'의 영달(유동근)이 대번에 떠오른다.
다른 영화 속의 설정을 드라마에 빌려올 수는 있지만, 이 드라마의 문제는 한 데 섞이기에는 턱없이 이질적인 요소들을 정교한 상황설정 없이 한 작품에 마구잡이로 집어 넣었다는 점. 때문에 불륜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설파한 '스캔들'과 사랑은 강한 자만이 지킬 수 있는 현실을 코미디로 둔갑시킨 '첫사랑 사수궐기대회'의 동거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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